“미래부가 가장 많이쓰는데 스스로 심의하는 건 문제”
새 정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출범도 전에 흔들린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권한, R&D 지출한도 설정 권한을 놓고 기획재정부가 반기를 들었다.
지난달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해당 권한은 미래창조과학부에 신설되는 과학기술혁신본부에 이관 예정이다. 기재부가 재정건전성, 심사 공정성을 이유로 이관을 반대했다. '독립성과 위상이 강화된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라는 새 정부 구상이 집권 초부터 위협받고 있다.
6일 관가와 정치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9일 우원식 의원 등 120인이 발의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 반대 의사를 국회 등 관계 기관이 전달했다.
개정안은 기재부가 수행하던 국가 R&D 예타를 과기혁신본부(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는 게 골자다. 국가 R&D 사업의 기관 별 지출한도(실링)도 기재부와 미래부가 공동 설정하도록 했다. 법안은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과 상호 연계된 '형제 법안'이다. 이들 법안은 지난 달 정부 조직개편을 위한 당정 협의 후속 조치로 발의됐다. 미래부에 차관급 과기혁신본부를 신설하고 예산권을 부여해 국가 R&D 전문성·독립성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미래부 내에 과기혁신본부를 설치하도록 했다.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은 미래부에 국가 R&D 지출한도 설정 등 예산 역할을 부여했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기재부가 국가 R&D 지출한도를 미래부와 공동 설정하도록 했다. 국가 R&D 예타도 미래부에 넘기도록 했다.
세 법안이 과기혁신본부 설립, 역할, 권한에 관한 사항을 각각 담았다. 이 중 하나라도 통과되지 못하면 과기혁신본부 위상이 약화된다. 예산권은 신설 과기혁신본부 핵심 권한으로 꼽힌다.
과기혁신본부는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도 운영됐다. 당시에는 예산권이 없어 컨트롤타워 역할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같은 지적을 감안해 새 정부는 과기혁신본부에 예산권 일부를 부여했다. R&D 특수성을 감안해 예산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과학계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기재부 반대로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불발되면 구상은 무산된다. 예산권 없는 옛 혁신본부로 되돌아간다. 과학계는 야심차게 출발한 혁신본부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보낸다.
국가 R&D 예타 부작용 해결도 지연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동안 R&D 사업 예타가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초·원천 연구에 무리하게 비용·효과 분석 잣대를 들이댔다. 예타에만 수 년이 소요되면서 R&D 적시성이 떨어졌다.
과학계 관계자는 “최종 예산 편성을 기재부가 하더라도 일부 조정, 배분, 심사 권한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것인데 기재부가 권한 방어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면서 “과학계가 수차례 지적했던 문제가 새 정부에서 겨우 수용됐지만 또 발목이 잡힐 판”이라고 비판했다.
기재부는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다. 미래부가 국가 R&D 예산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인데 스스로 예산을 심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출한도 설정 등 예산권과 관련해서는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고 기재부와 관련된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기 때문에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