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자 산업계가 '부품 품귀 현상'에 비상이 걸렸다.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는 물론 일반 전자부품까지 공급 부족 현상이 뚜렷하다. 부품 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가 하면 부품 부족으로 일부 전자제품을 적기에 생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애플과 삼성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하반기 전략 상품 준비를 위해 부품을 입도선매식으로 선점한 효과가 크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 주요 전방산업에서 전자 부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분야별로 공급 부족 원인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신산업 부상에 따른 부품 수요가 늘어난 것이 주효하다는 분석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도 공급이 지속 달리는 상황이다. 이는 가격 추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지속 상승세다. 5월 말 기준 주력 D램인 DDR4 4기가비트(Gb) 제품 가격은 3.09달러를 기록, 지난해 6월 1.31달러 대비 135.8% 상승했다. 주력 낸드플래시 제품인 128Gb 멀티레벨셀(MLC)의 5월 말 가격은 5.52달러였다. 지난해 5월의 3.51달러에 비하면 57.2% 올랐다.
값이 오르는 이유는 사겠다는 사람보다 팔 수 있는 물량이 적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는 2분기 D램 평균판매가격(ASP)이 10% 이상 상승한 데 이어 3분기도 5%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김준호 SK하이닉스 경영지원총괄 사장은 지난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메모리 공급 증가율이 수요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생산 물량 확대가 큰 폭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 메모리 업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올해 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폭은 D램이 20%, 낸드플래시는 30% 수준으로 전망된다. 과거 치킨게임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이 수치가 100%에 가까운 적이 있었다. 20~30% 수준의 비트 생산량 증가폭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전문가는 설명했다.
이처럼 물량 확대가 크지 않은 이유는 치킨게임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D램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3개사,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도시바 4개사만이 각각 의미 있는 생산 시설을 두고 있다. 과거 메모리 시장에선 10곳이 넘는 업체가 참여, 경쟁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이 같은 과점화로 인해 메모리 생산 업체가 의도해서 생산량을 줄인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면서 “공정 미세화의 어려움과 함께 선폭을 미세화할 때마다 웨이퍼 한 장에서 뽑을 수 있는 칩 개수 증가량이 과거에 비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메모리 업계의 총 투자액은 256억달러였다. 이는 2007년(315억달러)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치다.
둘째 이런 가운데 메모리 채용 양은 갈수록 늘고 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 D램은 8기가바이트(GB), 낸드플래시는 256GB를 채용하는 제품이 점차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PC도 마찬가지다. PC나 스마트폰의 절대 출하량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기기당 채용 양 증가는 전체 메모리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이미지센서도 공급량이 달린다는 의견이 있다. 삼성전자, 소니, SK하이닉스 등 주요 업체가 300㎜ 웨이퍼의 생산량을 늘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화성 11라인 메모리 공장을 이미지센서 생산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이천 300㎜ 공장에서 처음으로 이미지센서를 만들기 위해 현재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듀얼 카메라 채택 움직임, 자동차와 드론 등 적용 시장 확대 등으로 이미지센서의 장기 수요는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