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개발한 중소 통신장비 업계가 정부에 '시장 창출'을 호소했다. 수년 간 개발한 첨단기술을 묵히는 동안 자칫 외국에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우리로는 중소기업청 '글로벌 강소기업'에 선정됐다. 기술력을 정부가 공식 인정했다. 우리로가 개발한 단일광자검출기용 반도체 칩은 양자정보통신 필수 부품이다. 수백만 광자 가운데 한 개만 잡아내는 초미세 기술이다. 미국, 중국, 스위스 등도 탐낸다. 하지만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판로확보에 애를 먹는다.
또 다른 업체는 3분기 양자암호통신 장비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기술개발을 마치고 최종 점검 중이다. 대기업과 협력해 세계적 기술을 국산화했다는 자부심이 크지만 판로가 걱정이다. 정부가 아니면 아직 구매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개발했지만 팔 곳이 없다”면서 “양자 산업을 키우려면 정부가 초기 시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양자정보통신 업계가 '시장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어떤 산업이든 초반에는 정부가 시장을 만들어주는 게 일반적인데, 정부 투자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련한 5000억원대 국책과제 예산이 삭감될 것이라는 전망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예비타당성 조사 잠정 결과가 다음 달 초 나올 예정이다.
'양자 산업이 유망하다'는 정부 비전을 믿고 수년 간 기술개발을 한 업계는 난감한 표정이다. 정부는 2012년 양자정보통신을 정보기술(IT) 10대 핵심기술에 선정했고, 2014년에는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추진전략을 수립했다. 지난해에는 K-ICT 전략에서 이 분야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양자 사업을 주도한 SK텔레콤과 협력한 중소 장비업체가 7~8곳이다.
양자정보통신 가운데 가장 상용화에 근접한 양자암호통신은 2025년 세계 시장 규모가 9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지금 시장 형성 단계다. 정부와 기업 시험 설비 수요가 대부분이다. 금융 등 보안에 민감한 산업 중심으로 시장이 커질 전망이다. 적용 사례가 많고 가격이 싼 업체가 세계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시장은 상당히 작다. 경기 분당, 세종시 등 국가 시험망이 전부다. 대량생산이 가능하려면 큰 시장이 필요하다. 정부가 국책과제를 통해 시장을 만들고 기술력을 고도화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를 선도할 기술을 개발하고도 해외 경쟁국에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양자 업계 관계자는 “외국에서 개발한 기술을 가져다 팔기만 하던 우리가 모처럼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잡았다”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개발한 기술이 꽃필 수 있도록 정부가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자암호통신 세계 시장 전망(억원), 자료:마켓 리서치 미디어(2016.2)>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