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risk`는 이탈리아어 `rischiare`와 뿌리가 같다. 그러나 risk가 `위험`이라는 뜻을 지닐 때 rischiare에는 `감히 해보다`라는 의미도 있다.
1986년 1월 27일 오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로켓 제조사 모턴티오콜에 급히 회의를 요청했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며칠째 발사를 기다렸다. 이미 다섯 차례나 연기된 후였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추운 날씨에 로켓이 견딜 수 있을까요.” 로켓 이음매에 끼운 오링(O-ring)이 염려됐다. 낮은 기온에 고무링이 굳으면 틈이 생긴다.
오후 8시를 넘겨 나사와 티오콜 본사의 34명이 원격회의를 시작한다. 정보라고는 온도와 고무링 손상 정도를 나타내는 23개 수치뿐. 그마저도 섭씨 12도까지만 있다. 티오콜은 12도 이하에서는 발사를 권하지 못한다고 답한다. “그럼 4월까지 발사를 하지 말라는 겁니까.”
티오콜 본사는 내부 회의를 한다. 경영진이 참석한다. 나사는 티오콜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30여분 후 의견은 번복된다.
티오콜 현장 책임자는 서명을 거부한다. 결국 본사에서 부사장이 대신 서명한 문서가 전달된다. 이튿날 챌린저는 발사 73초 후 폭발한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기업은 성장과 수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위험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노사이트의 스콧 앤서니 파트너는 위험을 다룰 때 빠지기 쉬운 오해가 있다고 한다. 첫째 유능한 기업가는 위험을 선호한다는 생각이다. 본사 회의에서 오링 기술자가 반대하자 경영진은 “공학자 대신 경영자로 생각하자”고 설득한다.
이를 두고 앤서니는 유능한 기업가가 잘해야 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 아니라 `위험을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둘째 잘못된 판단으로 이끄는 함정이다. 부사장이 대신 서명해서 보낸 발사 허가 문서에는 온도와 고무링 손상의 관계가 확실하지 않다고 쓰여 있었다. 첫 번째 오링이 작동하지 않더라도 두 번째 오링이 작동할 것이라고 덧붙여졌다. 오링은 중요도 1 부품이다. 두 번째 고무링이 없다는 전제 아래에서 설계돼야 했다. 평가의 전제가 이미 잘못됐다.
셋째 역할이 뒤바뀌기도 한다. 발사 전날 밤 NASA와 티오콜은 실험 데이터를 두고 논쟁했다. NASA는 높은 기온에서도 고무링 손상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어느 순간 질문은 `발사가 안전한가`에서 `발사가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가 있는가`로 바뀌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위험을 피하면서도 혁신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글로벌 컨설팅 기업 CEB는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프로세스 대신 결정에 집중하라. 사이버 보안을 생각해 보자. 많은 기업이 문제가 발생했다고 가정하고 모의 훈련을 한다.
이런다고 위험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레고는 위험관리 중역을 둔다. 일정 이상 재무 부문 결정에 참여시킨다. 기업의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가 어느 정도나 위험한지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둘째 위험과 보상 사이의 균형 맞추기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저자 짐 콜린스는 `흘수선 법칙`을 인용한다. 위대한 기업들은 흘수선 아래에다 구멍을 낼 정도의 도박은 피해 갔다.
셋째 위험 스크린(risk screen) 방식을 만들라. 발사 전날 밤 티오콜과 NASA가 본 23개 데이터에는 기온이 낮을수록 손상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70도와 75도에 찍힌 세 개의 점은 데이터 분석에 익숙지 않은 엔지니어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사고조사위원회에 참여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은 고무줄을 나사로 눌러 찬물에 넣었다가 꺼내 보여 준다. 고무줄은 탄성을 잃고, 한동안 모양이 바뀌었다. 많은 사람의 탄식이 쏟아진다.
루이스 쿠스토디오 IBM 최고위험책임자는 `기업에 진정한 위험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그것을 제대로 안다면 이제 다른 시각에서 보라고 한다. “기업 가치를 보호하겠다는 것 대신 가치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해 봅시다.” risk가 rischiare로 되는 순간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