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의사를 밝히면서 재계, 대기업으로 확대된 수사가 일단락될 지 관심이 집중됐다.
주요 대기업들은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새해 경영계획 수립을 못하는 등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재계는 서둘러 기업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경영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나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매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정권 차원의 기업 압박과 강제 기금 같은 불합리구조가 말끔히 청산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이 12월 초 실시하던 인사를 연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예년 같으면 삼성그룹은 12월 첫 주에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고, 후속 임원 인사를 했다. 하지만 올해는 12월 첫 주인 6일에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출석이 예정돼 있다. 향후 특검이 출범하면 다시 한 번 소환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정상적으로 인사를 단행하기 어렵다.
삼성이 인사를 연기하면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던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연기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특검 수사까지 마무리된 뒤에 인사를 실시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삼성뿐만 아니라 현대차, SK, KT 등 다른 그룹들도 인사 연기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수 소환과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등을 지켜본 뒤 인사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새해 경영계획 수립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연말 연초는 새해 전략을 마련하는 중요한 시기지만 올해는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 특검 등에 대한 대비로 인해 역량이 분산되고 있다. 특히 총수들이 조사를 받고, 청문회에 증인으로 소환되면서 각 그룹 컨트롤타워가 이에 대한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그룹 출범 후 처음으로 연말에 하던 해외주재원 교육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연말이면 약 900명에 달하는 해외주재원을 본사로 불러 글로벌 시장 상황과 판매전략 등을 공유했는데, 올해는 현지 대응에 집중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그룹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최순실 사태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과 롯데, SK그룹이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대기업 총수와 주요 임원들은 검찰 조사도 받았다.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국정조사 특위에도 대기업 총수 9명이 청문회에 소환된다. 조만간 특검이 출범하면 다시 한 번 총수들과 주요 임원이 조사를 받고, 압수수색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평소 같으면 인사와 경영계획 마련으로 분주할 시기지만 올해는 다른 쪽을 생각할 엄두도 못 낸다”면서 “회사 분위기도 어수선한데, 사태가 정리돼야 분위기를 다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것도 부담이다. 또 기업에 대한 수사가 길어지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영에 악재가 된다. 국가적인 신뢰도 하락은 물론이고, 수사를 받는 기업에 대한 인식이 함께 나빠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외국 거래선으로부터 경영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최순실 사태가 언제 해결될 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내외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 상황까지 기업 경영활동의 불확실성이 되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서둘러 수사와 조사를 마무리하고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