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44> 멈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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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일에 막막해 할 때면 아빠는 잠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강한 힘이 있다고 합니다. 별빛 같은 아이디어, 다른 삶의 방식, 큰 시각에서 바라보기. 가끔은 내 마음 구석진 곳에 숨어 있던 가치 없고 필요 없는 생각 상자를 찾아서 보여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비우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뭔가를 비우는 것은 가치가 있나 봅니다.”

시장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새로운 경영 기법, 목표를 높이고 혁신 속도도 높인다. 성과는 눈에 띄게 좋아진다. 새로운 목표를 정한다. 또 한 번의 변화가 시작된다.

기업에 꼭 좋은 시그널일까. 쉴 틈 없는 혁신에 부작용은 없을까. 업무는 많아지고 적체된다. 사기는 떨어지고 사업 초점도 흐려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혁신은 힘겨운 과정이 된다. 그리고 `달리는 정지 상태`가 된다.

“아직도 많은 최고경영자(CEO)가 기진맥진과 나태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이케 부르흐 스위스 장크트갈렌대 교수와 요헨 멩게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런 신호가 보인다면 `가속성 함정(acceleration trap)`을 의심해 보라고 한다. 쉼 없이 달려왔지만 경쟁 기업에 비해 효율성과 생산성은 낮았다. 좋은 직원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두 교수는 이런 기업에 세 가지 파괴 특징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업무가 과도한 상태, `오버로드(Overload)`다. 업무에 비해 자원이 부족하다. 어떤 업무도 제대로 마칠 수 없다. 생산적 혁신은 사라진다.

두 번째는 너무 다양한 업무가 있을 때다. `멀티로드(Multiload)`에 직원들은 초점을 잃는다. 세 번째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할 때 나타난다. 과부하와 다중부하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으면 직원은 탈진한다.

1987년 스웨덴의 아세아와 스위스의 브라운보베리가 합병, 에이비비가 출범한다. 기업은 따로 돌아갔다. 고객을 두고 서로 경쟁했다. 한 고객이 8명의 다른 에이비비 직원들의 방문을 받기도 한다.

루프트한자는 10년 넘게 비용 줄이기에 매달렸다. 직원에게 관심은 `언제쯤 비용 줄이기가 끝날 것인가` 한 가지뿐이었다.

성공한 기업도 있다. 피닉스콘택트에 오버로드가 감지된다. 작업 시간을 줄인다. 곧 생산량에 문제가 생긴다. 군터 올레슈 수석부사장은 ABC 분석을 실행한다. 전사 차원에서 필요한 업무면 A, 중요하지만 조금 미룰 수 있다면 B로 매겼다. 2년을 미뤄도 되면 C를 줬다. 그럼에도 담당자는 대부분을 A로 매겨 왔다. “그렇다면 그 A를 다시 A1, A2, A3로 매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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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어떻게 터널에서 벗어날까. 저자는 네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잠시 행동을 멈추라. 지금 하는 일을 나열해 보자. 이 일을 지금 하지 않고 있다고 가정하자. 새롭게 시작한다면 그 가운데 선택할 만한 것을 찾아보자. `무엇을 새로 할까`라고 묻는 대신 `무엇을 그만둘까`를 찾아보라는 말이다.

둘째 전략부터 분명히 하라. 전략이 없다면 기준도 없다. 이커머스 기업인 오토 그룹은 `순간정지(Stop-action review)`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간부들에게 꼭 성공시켜야 할 프로젝트 하나씩만 정하게 했다.

셋째 가치의 기준을 정하라. 직원식당을 개선하는 것은 수익성과 별반 상관없다. 하지만 직원의 사기를 높이고 긴장을 줄였다.

넷째 새 방식을 선언하라. 에이비비의 혼란은 위르겐 도어만이 조직 정비가 끝났음을 선언하면서 마무리된다. 루프트한자도 마찬가지였다. 새 CEO 볼프강 마이어후버가 비용 절감을 혁신과 서비스 문화로 바꾸자 문제는 잦아든다.

생각해 보자. 직원과 조직을 너무 자주 극한까지 몰아붙이지는 않은지. 새 프로젝트 만들기에 열중했을 뿐 줄이는 방법은 시도한 적이 있는지. 그리고 가속성 함정에 빠진 것은 않은지.

울리히 슈나벨은 프랑스 철학자 파울 비릴리오를 인용해 “계속 시간에 ?기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변화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한다. 2013년 9월, 허핑턴 포스트에 실린 어느 고등학생의 블로그나 슈나벨의 책 제목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가치`도 생각해 봄 직하다. 가끔 멈춰 보자. 어쩌면 이들 말처럼 `가끔 필요 없는 것을 찾아서 보여 주는` 소중한 투자일지 모른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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