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이 자율주행차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 쌓아 온 전자 분야의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는 기존 자동차와 달리 통신으로 대변되는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SW), 콘텐츠 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기존 글로벌 전자 분야를 이끌어 온 한·중·일 3국이 유리한 형국이다. 그러나 영원한 일등은 없다. 한·중·일 3국의 전자 산업도 새로운 판을 짜야 할 변혁 시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정치·경제 지형과 내부 산업 구조 개편 등 대내외 여건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변신을 모색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동안 한·중·일 전자 산업은 수출 우선 정책이라는 비슷한 궤도를 밝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글로벌 보호주의가 득세할 것으로 보이는 등 새로운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한·중·일 기업은 글로벌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구조조정, 인수합병(M&A), 4차 산업혁명 추진 등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다지기에 나섰다.
◇영원한 1등은 없다...위기감 고조
최근 한·중·일 3국의 기업들은 `영원한 일등은 없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최근 일본 니콘은 직원 1000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무용 기기 업체 리코(RICHO) 역시 생산 거점을 폐쇄하고 기획·설계 등 간접 부문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캐논도 사무용 프린터와 카메라 판매 감소로 2016년 회계연도 순이익 전망을 전기 대비 25% 감소로 하향 조정했다. 이 같은 구조조정과 실적 악화는 일본 경제의 마지막 보루이던 정밀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방증이다. 가전,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부문에서 한국과 중국에 자리를 내 준 일본으로서는 정밀기기 산업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감이 높아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을 따돌린 한국 전자 업계도 입지를 위협받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의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 사고와 가격을 앞세운 중국 스마트폰의 공세 등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경제성장률이 6%대로 떨어지면서 `뉴노멀` 시대에 접어든 데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높은 관세를 물린다면 수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과 M&A에 적극
한·중·일 기업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때 글로벌 전자 산업을 호령하던 샤프와 도시바 가전 부문을 올해 대만 훙하이와 중국 메이디에 매각한 일본은 구조조정,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섰다.
소니는 내년 4월 `소니 이미징 프로덕트&솔루션`이라는 자회사를 새로 만들어서 카메라와 방송장비 사업부를 분사할 계획이다. 경영 체제를 전면 개편, 핵심 사업에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계획이다. 소니 본사는 그룹 전체 전략 수립과 연구개발(R&D) 등을 담당하는 지주 회사 역할을 한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지난 7월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을 약 35조원에 인수했다. 소프트뱅크와 ARM은 다양한 프로세서 설계,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SW), 물리적 IP, 보안 기술, 무선 및 스마트 커넥티드 플랫폼에 걸쳐 R&D를 집중 투자해 사물인터넷(IoT) 시장을 장악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인공지능(AI) 업체 비브랩스를 인수한 데 이어 전장 업체 하만을 9조3000억원에 전격 인수했다. 국내 M&A 역사상 최대 해외 업체 인수 금액이다.
중국도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 M&A 시장에서 가장 큰손으로 떠올랐다. 올해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 부문, 도시바 가전 부문, 4대 산업용 로봇 업체 독일 쿠카 등이 중국 기업에 매각됐다. 유럽에서 중국의 유럽 기업 인수로 기술 유출과 산업 기반 붕괴가 우려된다며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정도다.
◇제조업 기반에 한계, 4차 산업혁명 주도해야
한·중·일 3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성장을 이끈 제조업만으로는 지속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자국 보호주의 무역 강화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시간이 걸리겠지만 산업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제조업 위주에서 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서둘러 전환해야 한다. 독일 등은 한·중·일이 제조업에 머무는 사이 패러다임을 이미 바꿨다. 미국과 유럽 기업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제조업을 융합한 4차 산업혁명에 초점을 맞췄다. AI가 결합된 자율주행차와 클라우드서비스, IoT 등은 산업 판도를 크게 바꿔 놓을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안에 관련 산업은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주축 세력이 될 것이다. 한·중·일도 제조업으로 쌓은 경쟁력을 4차 산업으로 빠르게 옮겨 가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