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이미 와있다. 공급자 중심 사고를 탈피하고 수요자와 시장 중심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
한국무역협회(회장 김인호)와 전자신문은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정보통신기술(ICT)/사물인터넷(IoT) 융합제품의 해외진출 활성화를 위한 전문가 포럼`을 열고 미래 산업에 구체적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인사말에서 “4차 산업혁명은 더 이상 새로운 단어가 아니고, 대표적 기술로 IoT 등을 들 수 있다”며 “무역업계를 대표해 4차 산업혁명에 발 맞춰 업종별로 간담회를 열고 현장 애로사항을 듣고 정부에 건의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민·관을 대표해 모인 참석자들은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인공지능(AI)과 같은 핵심 기술경쟁력이나 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데 공감했다.
미국, 중국, 독일 등은 AI와 소프트웨어(SW), 전기차, 스마트팩토리에 앞섰고 우리나라는 이를 뒤쫓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민동욱 엠씨넥스 대표는 “우리나라 자동차 센서기술은 선진국과 비슷한데, 사람처럼 사고하고 판단하는 AI 수준의 SW 기술은 아직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민 대표는 선진국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계속 4~5년은 추가적으로 연구개발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IoT 기업의 애로사항은 기술개발과 동시에 매출까지 확대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안고 있다고 전했다. 중소기업 특성상 자금이나 경영부담이 크고, IoT 시장 성숙기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급자 중심 탈피, 대규모 수요 창출 전략 전환
참석자들은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공급자 중심의 사고관으로 `AI산업을 육성한다` `한국형 알파고를 만든다` 식의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최두진 한국정보화진흥원 본부장은 외국이 하니 무조건 따라가서는 안 된다며 빅데이터를 통한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본부장은 “정부 초기에 데이터 기반 정책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일부 있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빅데이터센터 구축도 테스트베드 수준”이라며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인공지능을 통합적 플랫폼으로 구성해야 하는데, 기술별로 제각각 정책이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의 산업 육성 전략이 공급자 중심이라고 분석했다. 각 산업 도메인별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고 AI와 결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민간도 공급자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형 가전사와 통신사가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 위에 돌아가는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최 본부장은 “공급자 전략뿐만 아니라 대규모 수요 창출이 이뤄지는 전략이 함께 나와야 공급과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며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초기에도 망을 구축하는 전략과 함께 교육서비스 등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이 같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원하는 것 찾고, 장기적으로 인재양성준비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단기 전략과 장기 전략이 모두 제시됐다.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은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 뒤쳐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과열된 면도 있다”며 “시장이 원하지 않는 정책이나 기술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알파고` 이후로 AI 논의가 급증했지만, 시장과 실질적 연결성은 별로 없었다.
정 원장은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지금 소비자의 욕망을 충족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가정의 월 평균 전기료가 3만~4만원 수준인데, 3000~5000원을 절약하기 위해 값비싼 IoT 기기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전에 어느 시장을 집중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기업은 수요를 확인하고 시장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부터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그동안의 사업을 서로 연계하고 민간기업과 협업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다. 또 필요한 기술과 인력 양성 과제를 장기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원동진 산업통상자원부 국장은 “트렌드는 더 이상 특정 산업(섹터)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형으로 가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인력이기 때문에, 입시·사교육·산학협력 등에 이르는 인재양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장기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은 “4차 산업혁명은 적용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에 개념 정립을 잘해야 한다”며 “기술적 관점에서는 선진국에 의존한 요소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기술 공유의 장 만들고, 기업은 합종연횡 시도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이 공유한 것은 융합과 협업의 화두였다.
박청원 전자부품연구원장은 4차 산업혁명은 그동안 축적된 기술이 발현되는 융합의 순간이라며 시장이나 생태계와 연관되지 않으면 작동이 안 되는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박 원장은 “정부의 정책방향도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식이 아니라 기존 기술을 잘 활용하고 융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출연연 연구기관 등이 개발한 기존 기술을 적극 공개하고 공유하는 아이디어에 참석자들은 모두 공감했다. 기존 기술도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박 원장은 “오래 전에 연구원에서 자동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할 때 느끼는 어지럼증을 없애는 기술을 개발할 적 있는데, 이를 GM이 공동 연구하면서 재발견했다”며 “GM은 이를 자율주행차 기술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소개했다.
이순호 달리웍스 대표는 “하나의 대기업이 모든 것을 다 개발할 수는 없다”며 대만의 성공한 임베디드 기업인 어드밴텍은 철저하게 에코시스템(생태계)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확대해갔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기업도 중소 기업군끼리 파트너십을 구축하면 기술력 대비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다고 아이디어를 내놨다. 동남아시아 시장 등에서는 가격 경쟁력 있는 제품을 원하는 수요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김태열 정보통신산업진흥원 SW진흥단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는 기존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타개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산업의 사람들과 끊임없는 이종교류를 통해 찾아야 한다”며 “용어나 신기술에 매몰되지 말고, 기존 기술도 공급자 관점이 아닌 수요자 관점으로 새롭게 보면 활용 가능성이 넓다”고 말했다.
그는 칫솔질을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칫솔질을 하면 음악이 나오는 기구를 개발하는 식으로 새로운 수요 창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장은 “우리나라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돌이켜보면 해외에서 이를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며 “위기라는 것만 확실히 느끼면 빠르게 극복할 것이고, 강소기업의 끊임없는 시도만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기회”라고 당부했다.
◇참석자명(무순):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조재현 우리은행 부행장,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 원장, 민동욱 엠씨넥스 대표, 이순호 달리웍스 대표, 박청원 전자부품연구원 원장,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김태열 정보통신산업진흥원 SW진흥단장, 최두진 한국정보화진흥원 ICT융합본부장,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원동진 산업통상자원부 국장, 최원호 한국무역협회 본부장, 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
김명희 기업/정책 전문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