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바이오벤처 1000개는 나와야 합니다. 그중에 절반 은 의사나 연구자 등 전문가가 창업한 벤처 생태계로 구축될 때 미래가 밝습니다.”
서정선 바이오협회장(마크로젠 회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이오 벤처 생태계`다. 뿌리가 튼튼한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벤처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바이오 벤처 1000개 양성론`을 주창하면서, 핵심에는 의사나 의과학자 등 전문가 창업이 있다고 강조한다.
서 회장은 “정보·예측 의학으로 대변되는 미래의학은 질병을 꿰뚫는 전문 지식과 환자, 병원 요구를 발 빠르게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사가 헬스케어 영역을 산업화하는 선봉장에 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의학은 개인 유전자 분석 등으로 질병을 사전 발견해 예방하고, 맞춤형 치료를 구현한다. 선제 대응을 위해서는 의약품부터 디바이스, 건강보조 솔루션까지 기술뿐만 아니라 임상적 전문성을 강하게 요구한다. 병원 안에 머물렀던 의사 역할이 커진다.
국내 바이오 벤처 환경에서 의사 역할은 제한적이다. 의사가 창업하거나 경영·연구에 참여 중인 기업은 40여개에 불과하다. 서 회장은 3년 안에 최대 500개까지 늘어나야 산업발전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내년 바이오협회 가장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바이오 벤처 창업과 인큐베이팅”이라며 “1000개 바이오 벤처 육성을 목표로 하는데, 이중 500개가량은 의사나 의과학자가 창업한 기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서 회장은 바이오 벤처 전문가 창업 1세대다. 1997년 유전체 분석 서비스 기업 마크로젠을 설립, 국내 바이오 벤처 1호 상장 기업이 됐다. 현재 400명을 거느리고 매출 1000억원을 바라보는 대표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 시켰다.
그 역시 실패와 아픔이 많았다. 모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1980년대 미국 유전학 붐을 타고 미국 텍사스로 건너가 바이오 벤처 `뉴돈 컴퍼니`를 설립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사업화의 정교함이 부족했다. 쓰라린 실패를 맛보고 1988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미국 사례가 `실패`가 아닌 `교육`이었다고 강조한다. 그곳에서 경험했던 점을 고스란히 마크로젠 경영에 주입시켰다. 의사도 실패의 두려움으로 진료실 안에만 있기보다는 창업을 교육 삼아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험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미래에는 의사가 막강한 권위를 가진 집단이 아니라 환자 건강을 조언하는 컨설턴트 역할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며 “스스로 위기감을 느낀 의사들이 조금씩 나오는데, 창업을 통한 시장 참여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학생을 가르쳤던 그는 의사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의대 교수만 해도 진료, 수술, 강의 등 하루가 빡빡하다. 하지만 창업을 가로막는 것은 시간적 어려움보다 조직 내 편견이다.
그는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의사나 교수가 창업을 하면 교육자 의무를 저버리고 돈벌이에 목숨 거는 장사꾼이라는 시각이 크다”며 “전문가 창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조직 내 인식을 전환하고, 가능성 있는 기업에 참여하는 교수를 학교가 배려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나 산업계에서 의사 창업 성공사례를 꾸준히 알려 인식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사업화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의사를 지원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대학병원 내 창업 보육센터를 구축하고 의학전문대학원 과정에 창업, 경영 등을 추가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다. 정부는 의사도 이런 교육 과정을 밟도록 재정·행정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서 회장은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의학전문대학원에 비즈니스 과정을 정규화해 창업 비전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창업이 활성화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실패한 창업가가 재기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