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시스템반도체의 기술 경쟁력은 약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70%로 높다. 메모리는 30%에 불과하다. 반도체 사업에서 더 큰 매출을 올리려면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해야만 했다.
그 당시 삼성전자는 마이크로사업부에서 일부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었다. 시장 영향력은 미미했다. 매출과 이익은 20년 전부터 경기도 부천공장에서 생산해 온 개별 트랜지스터에서 나왔다. 고부가 제품인 주문형반도체(ASIC)나 시스템온칩(SoC) 사업은 엄청난 적자에 시달렸다.
삼성전자는 1997년 1월 마이크로사업부를 확대 재편, 시스템LSI사업부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시스템LSI사업부의 첫 수장으로 발령 받은 진대제 부사장은 눈앞이 캄캄했다. 고객사들의 관심을 끌 만한 차별화된 제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업을 위해 만난 노키아의 구매 담당 부사장으로부터는 “노키아가 삼성전자 메모리를 쓰는 것은 세계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가져온 제품은 의외네요. 서로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불어닥쳤다. 삼성전자는 전사 차원에서 생존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이듬해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부천공장을 미국 페어차일드에 매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부천공장은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삼성반도체의 요람이다. 이 공장의 매각 결정은 삼성전자의 각오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매각으로 들어온 자금을 시스템LSI 사업 투자에 활용했다.
2002년 8월 삼성전자는 차세대 수종 사업으로 시스템LSI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중장기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세계 1위의 시스템LSI 제품을 다수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그해 말 세계 첫 1위 제품이 탄생됐다. 액정표시장치(LCD) 구동 칩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6.8%로 1위에 오른 것이다. 9월에는 카메라용 이미지센서 양산을 시작했다. 2004년 11월에는 스마트카드용 칩 신제품을 출시했고, 얼마 안 있어 관련 분야에서 시장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SoC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한 시기도 2002년이다. 삼성전자는 용인시 기흥사업장에 SoC 연구소를 설립하고 디지털TV, 모바일 기기용 SoC를 개발·양산하는 체제를 갖췄다.
2003년에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 분야에 뛰어든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첨단 공정 기술 확보를 위해 미국 IBM과 공동 개발 협약을 맺었다. 협약 과정은 쉽지 않았다. 조건이 맞지 않아 한 차례 협상이 좌절되기도 했다. 2004년 2월 서광벽 전무를 비롯해 서병훈·강호규 부장 등 계약팀 8명은 마침내 최종 협상을 타결했다. 삼성전자는 IBM과의 공동 기술 개발에 바탕을 두고 파운드리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디스플레이 구동 칩, 내비게이션·MP3 플레이어용 SoC, 스마트카드 칩, 이미지센서를 포함한 5대 제품 일류화 사업을 본격 추진하며 점유율을 늘려 나갔다.
2008년 시스템LSI사업부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사상 처음으로 매출 2조5000억원을 돌파하며 대규모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 시기에 메모리 업계는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시스템LSI사업부가 반도체 전체 사업 실적을 견인했다. 1998년 시스템LSI사업부를 발족한지 10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점차 경쟁력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애플의 스마트폰용 SoC를 위탁 생산하면서 매출 규모를 늘려 나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갈 길이 멀다고 평가한다. 인텔이나 퀄컴처럼 확고한 시장 지위를 확보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