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13> 삼성, 도시바 합작 제의 거절… 신시장 창출, 낸드플래시 1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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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이건희 회장(사진 왼쪽)이 황창규 사장으로부터 70나노 4Gb 낸드플래시 개발 기념패를 받고 있다.

2001년 8월 이건희 회장은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반도체총괄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황창규 메모리사업부장을 일본 도쿄의 오쿠라호텔로 불러 모았다.

삼성은 얼마 전 일본 도시바로부터 낸드플래시 합작 개발 제의를 받았다. 이를 받아들일 것인지 삼성 홀로 사업을 이끌고 나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오쿠라호텔은 이병철 선대 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심한 곳이다.

이들은 호텔 인근에 위치한 음식점 자쿠로로 자리를 옮겼다.

“도시바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낸드플래시는 저희 메모리 사업부가 신수종 사업으로 키워 온 품목입니다. 도시바의 제의를 검토해 봤지만 합작보다 삼성 홀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도시바와 비교해 가격이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냉정하게 평가해 주세요.”

“아직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곧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플래시메모리가 미래 시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차근차근 기술을 쌓아 왔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경영진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자신의 생각과 경영진의 생각이 일치했다. 이 회장은 최종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도시바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밀고 나갑시다.”

삼성전자 원로들은 이날 모임을 `자쿠로 회동`으로 기억했다. 자쿠로 회동은 D램 신화에 이은 플래시메모리 신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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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30주년을 맞아 기념 서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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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일본 도시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16M 플래시메모리를 개발하고 1994년 양산에 들어갔다. 플래시메모리는 전원이 끊겨도 저장된 데이터를 보존하는 롬(ROM)의 장점과 읽기, 쓰기가 자유로운 램(RAM)의 장점을 두루 지닌 고성능 고부가가치 메모리였다.

도시바는 다수의 플래시메모리 기술 특허를 보유한 선두 기업이었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이 45%에 달했다. 삼성전자 점유율은 26%로 2위였다. 물론 이 시기의 낸드플래시 시장 규모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삼성전자는 기술 역량을 차근차근 쌓았다. 1999년 256M, 2000년 512M, 2001년 1G 낸드플래시를 개발하면서 매년 용량을 갑절로 증대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당장 낸드플래시를 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낸드플래시를 활용하는 전자제품 종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은 그동안에도 수요처가 없어 신규 플래시메모리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이 플래시메모리에 처음 손을 댄 것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이 자체 양성한 해외박사 1호 임형규 수석이 16K EEP롬 개발에 성공하면서부터다. EEP롬은 플래시메모리의 원조격이다. 그러나 EEP롬은 항공우주, 일부 산업용으로만 사용될 정도로 가격이 비쌌다. 대량 수요처가 없어 제품을 개발해 놓고도 적자만 봤다.

EEP롬 다음으로 개발한 제품은 마스크롬이다. 그 당시 인기가 높던 게임기 겜보이나 다마고치에 적용한 메모리가 마스크롬이었다. 임 수석은 1989년 2년 동안의 노력 끝에 마스크롬을 개발했다. 삼성은 마스크롬으로 4억달러라는 높은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곧 한계가 찾아왔다. 게임기 말고는 적용될 분야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플래시메모리 개발의 끈을 놓지 않은 건 이건희 회장의 의지 덕분이었다. 이 회장은 D램 사업이 세계를 제패하며 승승장구할 때 오히려 메모리 사업 다각화를 위해 플래시메모리 투자를 계속했다. 기술 방식에 대한 선택도 맞아떨어졌다. 1990년대 플래시메모리의 주류는 노어플래시였다. 노어플래시는 읽기 속도가 빠르고 안정성이 우수하지만 대용량화가 어렵다. 인텔과 AMD 등 세계 반도체 업계는 노어플래시에 집중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노어플래시보다 용량당 단가가 저렴한 낸드플래시에 역량을 쏟았고, 속도·안정성 등 한계를 극복해 나갔다.

도시바의 제의를 거절한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PC 업체를 설득하기로 한 것이다. 마케팅팀은 대만으로 날아가 PC 본체 뒷면에 있던 USB 포트를 앞면에 배치하도록 생산 업체를 설득했다. 이와 함께 손가락 마디만한 USB 메모리를 대규모로 마케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USB 메모리는 큰 인기를 끌었다. USB 메모리 성장으로 삼성전자는 2003년 낸드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서 60%가 넘는 점유율을 올리며 단번에 시장 1위에 올랐다.

2005년 낸드플래시의 공급 과잉이 예상되자 삼성전자는 또 다른 수요처를 찾기 위해 당시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애플을 찾아갔다. 당시 애플은 하드디스크 제품만을 출시하고 있었다. 애플은 삼성 제안을 받아들여 낸드플래시를 저장장치로 채택한 신형 아이팟을 출시했다. 바로 `아이팟 나노`다. 아이팟 나노 출시 이후 후발업체도 저장장치로 낸드플래시를 채택하면서 수요는 급증했다. 이후 휴대폰과 PC에도 각각 낸드플래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탑재되면서 시장은 계속 커 갔다. 삼성전자는 2003년 이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줄곧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메모리사업부 매출에서 낸드플래시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상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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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이 7년 연속 `황의 법칙`을 실증하며 전세계 반도체업계에 40나노벽 돌파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 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자쿠로 회동 때 도시바의 제의를 거절하겠다는 경영진의 결단이었다. 전문가들은 그때 도시바의 제의를 수락했다면 한국의 플래시메모리 산업은 일본의 그늘에 가려 몇 년은 후퇴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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