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는 선발 주자들이 만들어 낸 국가 자산이다. 미국은 이러한 자산에 기초를 두고 인터넷과 모바일에 이어 바이오, 인공지능(AI), 우주산업 등 분야에서 미래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원래 선발 주자들은 황무지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고 세계 기업으로서의 명성을 떨치는 경우가 많다. 그 덕분에 해당 지역이 명소로 떠오르기도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성공이 주변으로 확장돼 국가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창의성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로 볼 때 정보기술(IT)산업의 대표 선발 주자로 꼽히는 휴렛팩커드는 1939년 팰로앨토시 에디슨가 367번지 차고에서 창업했다. 당시 스탠퍼드대 프레더릭 터먼 교수가 심각한 실업난에 빠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두 제자에게 창업을 권유한 것이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발상지가 됐다.
현재도 미래 산업을 주도하는 기술 대부분이 구글, 애플, 페이스북, 테슬러 등에서 보듯 실리콘밸리 선발 주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것이 부러워 한 많은 국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하면서 실리콘밸리를 복제하려 했다. 그러나 시원하게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이미 잘 알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을 보자. 첫째 산·학·연 협력 체계다.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한 명문 대학들과 지역 기업들 간의 긴밀한 교류 및 협력 인프라다. 둘째 `실리콘밸리 웨이`로 불리는 개방된 사업 방식과 신뢰를 존중하는 경영 방식이다. 셋째 풍부한 벤처자본이다. 벤처자본의 역사는 1946년 동부에 위치한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시작됐지만 꽃은 서부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피우고 있다. 현재 성공한 수많은 벤처기업인이 벤처자본가로 활동하고 있다. 넷째 좋은 자연 환경, 개방된 지역 문화 등으로 이민 사회의 기여도가 매우 높다. 이 덕분에 전 세계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다.
문제는 대학, 제도, 인재, 자본, 자연 환경 등으로 요약되는 성공 요인들을 이미 파악하고 있지만 정작 복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 케임브리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곳이다. 영국 정부는 1970년대부터 실리콘밸리를 모방해 케임브리지대에 사이언스 파크를 조성하고 강력한 신기술 지원 정책을 폈다. 그리고 벤처자본도 풍부하게 투여했다. 교육과 주거 환경, 노사 관계도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케임브리지대의 실패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정부는 대기업과 밀착해 방위 산업 예산의 60% 이상을 10대 대기업에 쏟아부었다. 둘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장벽이 높아 상호 교류가 어려웠다. 셋째 벤처기업들은 기술은 우수해도 마케팅 및 경영 능력이 부족했다. 넷째 벤처캐피털 회사는 많아도 대부분 벤처 경험이 부족한 금융권에서 진입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내용들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노하우는 의외로 간단하다. 창업가, 중소기업, 대기업, 대학, 정부, 금융기관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장벽을 허물고 민감하게 상호 교류해서 협력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여러 번의 위기를 극복하며 성공 드라마를 써 왔다. 1930년대 경제 공황 직후 빈곤한 지역 상황에서 출발해 1980년대 중반에는 반도체 산업이 휘청했으며, 2000년대 들어와 닷컴 버블을 겪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는 이러한 위기들을 특유의 공동체 기반 위에서 기회로 반전시키며 `반도체→ 컴퓨터→ 인터넷정보통신→ 바이오 및 모바일→ 우주산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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