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10>“우리가 만들자”… 케이씨텍, 무역상에서 국산 장비 제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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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케이씨텍 안성 제1공장 착공식

케이씨텍은 1987년 작은 무역상으로 시작했다. 고석태 케이씨텍 창업자는 1980년대 직장 생활 당시 다양한 산업용 가스를 다루다가 1987년 2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사거리에 27평짜리 사무실을 열고 무역 중계업, 이른바 `오퍼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회사 이름은 케이씨텍(KCTech)으로 지었다. 지식(Knowledge)과 창조성(Creativity)을 뜻하는 KC와 기술을 의미하는 Tech를 붙였다. 지식을 기반으로 창조적인 기술 관련 아이템을 전문으로 취급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고 회장은 창업 초기에 전 직장에서 영업하면서 다룬 가스 관련 부품을 취급했다. 가스밸브, 레귤레이터, 튜브, 유량계 등 설비를 수입해 국내 수요업체에 판매했다. 창업 초기 2년 동안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1989년부터 사업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4~5명에 불과하던 직원은 10명으로 늘었다. 매출도 성장, 1990년 6월 주식회사로 법인 전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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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케이씨텍 광주공장에서 설계작업. 당시 캐드가 없어 손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장비를 들여와 판매하는 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고객사는 가격 인하를 요청했고, 해외 공급사는 늘 비싼 가격을 고집했다. 양쪽 입장을 모두 들어야 하는 중간 입장이 편치 않았다. 해외 장비 공급사는 기술 노하우 공개를 극도로 꺼렸기 때문에 고장이라도 나면 사후관리(AS)하기에도 쉽지 않았다. 고 회장은 공연히 국내 고객사에 손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한번 직접 반도체 장비를 만들어서 팔아 보면 어떨까.”

직접 생산을 시도하게 된 계기였다. 케이씨텍은 1991년부터 경기도 성남 기술연구소에서 가스정화장치를 직접 개발하고 생산하는 제조업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당시 주변 지인들은 고 회장을 말렸다. 안정된 무역업을 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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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가스캐비넷 500대 출하 기념식

고 회장은 “그동안 무역업을 통해 누군가는 장비 국산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돈은 벌어도 보람이 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케이씨텍은 국내 고객사와 공동으로 장비 국산화에 나섰다. 초기에는 반도체 장비와 관련된 설비 배관이나 자재·밸브·레귤레이터·피팅 등에 관여하다가 점차 스크러버(가스 정화 장치), 펌프 등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후 사업 영역을 케미컬과 메인 장비 분야로 확장해 나갔다. 가스, 케미컬 공급 장치는 지금도 케이씨텍 주력 장비로 자리 잡고 있다.

고 회장은 “처음엔 우리 장비에 대한 신뢰성이 없어서 소자 업체가 잘 안 써 주려고 했다”면서 “그러나 담당 엔지니어가 끈질기게 설득하고 기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품질을 높여 갔다”고 설명했다.

핵심 매출원이던 가스캐비닛은 반도체 공정의 기본 장비였다. 그러나 제조 공정에 필수인 가스를 안정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소홀이 할 수 없는 전문 기술을 요한다. 가스캐비닛의 활발한 수출과 잇따른 신제품 출품으로 1990년대 중반 케이씨텍의 매출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1993년 67억원이던 케이씨텍의 매출은 1994년 124억원, 1995년 202억원, 1995년 313억원으로 매년 150~200% 성장했다.

1999년에는 액정표시장치(LCD)용 세정장비를 생산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기에 이른다. 케이씨텍은 디스플레이 사업 분야 진출로 제2의 도약기를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케이씨텍 매출 가운데 상당 부분이 디스플레이 세정 등을 맡는 웨트스테이션 장비군에서 나온다.

케이씨텍은 최근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핵심으로 꼽히는 화학기계연마(CMP) 장비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CMP는 절연막이나 금속 배선 평탄화 공정을 뜻한다. 해외 장비 기업이 꽉 잡고 있는 공정 장비다. 이 분야에서 점유율을 높이면 상당히 많은 수입 대체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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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씨텍 본사 전경

현재 케이씨텍은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산업계에서 매출액 순위로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핵심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과에 대해 고 회장은 2007년 2월에 발간한 케이씨텍 사사(社史) `기술혁신의 신화, 케이씨텍 20년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케이씨텍의 오늘을 있게 한 바탕은 풍부한 자금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선진 외국기술을 능가하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시작을 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기술을 도입할 만한 기본기조차도 완벽하게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해 오로지 `고부가가치 장비의 국산화, 최고의 기술로 승부를 걸겠다`는 임직원들의 남다른 의지와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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