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향기] 목성찾아 삼만리, 주노의 탐험

“집안일이라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누구엔가 하소연이라도 해야 답답한 가슴이 풀릴 것 같아 이렇게 털어놔 봅니다. 제 남편은 지독한 바람둥이에요. 제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꼭 사고를 칩니다. 남들에 들킬까 싶어 짙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 여자들을 만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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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이런 저를 `질투의 화신`이니, 남편과 함께 바람을 피운 여자를 잔인하게 응징하는 `복수의 화신`이니 하면서 저를 독한 여자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내로써는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그런 남편을 살피기 위해 저는 아주 먼 길을 떠났습니다. 달려온 거리만 해도 27억km. 2011년 8월에 집을 출발했으니 이제 딱 5년 정도 됐네요. 오늘 드디어 괘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립기도 한 남편에게 도착했습니다.

남편을 찾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먼 거리를 달려온 저가 누구냐고요? 제 남편 이름은 주피터, 사람들은 목성이라고도 부르죠. 저는 그의 정실부인 주노예요. 목성 탐사선이라고도 부르죠. 이제부터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하려고요. 그리고 바람피운 여자들도 찾아 다그치고 혼을 내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 이러한 여자들을 주피터의 위성이라고 부르더군요.”

주노는 올해 목성 궤도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무인 목성 탐사선이다. 2011년 8월 6일 아틀라스V 로켓에 실려 발사된 목성 탐사선으로 무게 4톤, 높이 3.5m, 지름 3.5m의 육각형 동체를 지니고 있으며, 고효율 태양전지가 장착된 태양전지판 3개가 달려 있다. 주노의 목성 궤도 진입은 2011년 8월 5일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기지에서 발사된 지 4년 11개월 만이다. 1995년 12월 `갈릴레오` 탐사선이 진입한 이후 20년 반 만이다.

탐사선 이름은 로마신화에서 유래했다. 탐사선 목적지인 목성의 이름은 주피터. 그리스 신화 속의 제우스가 전신으로 로마신화에서는 번개를 다루는 최고의 신으로 등장한다. 그는 천하의 바람둥이였다. 여신에서부터 님프, 심지어 인간에 이르기까지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고 보면 태양계 5번째 행성인 목성을 주피터, 그 목성을 탐사하는 우주선을 주노라 각각 이름 붙인 것은 절묘한 어휘 선택이었다. 목성은 수많은 여인을 거느린 주피터처럼 무려 67개 위성을 두고 있으니까 말이다.

주피터는 주노의 감시망을 피해 이 여자 저 여자를 탐했다. 그런 주피터가 어느 날 이오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주피터는 아내의 눈을 피하려고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킨 뒤 짙은 구름을 깔아 감춰둔다. 그러나 질투의 화신이라는 아내 주노의 육감은 놀라웠다. `구름 속 암소`가 된 이오를 기어코 찾아내 처절한 복수극을 펼친다.

주피터는 다른 여성을 유혹할 때면 주변에 구름으로 장막을 쳐 감추곤 했는데 유독 정실부인인 주노만이 구름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어 남편이 바람 피우는 현장을 잡아낼 수가 있다. 태양계 행성들 가운데서 가장 큰 목성 주피터도 신화와 다를 바가 없다. 목성의 주변은 50㎞ 두께의 아름답고 거대한 가스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탐사선 주노가 여신 주노처럼 그 구름을 뚫고 목성 내부의 구성을 알아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인간은 지금까지 목성을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지구보다 14배 강한 자기장, 내부의 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악의 방사선, 여기에 지구의 318배에 이르는 엄청난 질량에 따른 강력한 중력 등으로 인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환경이다. 전파망원경도 통하지 않는다. 전파가 두꺼운 기체가 방어막을 치고 있는 목성의 대기에 반사되지 않고 그대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마치 주피터가 자신과 애인의 애정행각을 가리려고 구름을 깔아놓은 격이다. 1995년 목성 궤도에 진입한 갈릴레오 탐사선 역시 멀리서 목성계 전체를 조망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면 11억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1조2700억원이 투입된 이번 주노 프로젝트가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금까지 여러 대의 탐사선이 목성을 탐사했지만 주노만큼 장시간 근거리 관측을 한 탐사선은 없다. 인간이 보낸 우주선이 목성의 극지방 상공궤도를 지나는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목성의 비밀을 주노가 파헤쳐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목성은 우리 인류가 어디에서 왔고, 왜 행성인 지구에 있는지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목성의 핵심에 우리의 지구와 태양계의 비밀을 설명해 줄 데이터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목성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따라서 주노 탐사선이 태양계 형성 초기에 목성처럼 거대한 행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해답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사히 목성 궤도에 진입한 주노는 앞으로 20개월 이상, 목성 주위를 서른일곱 바퀴를 돌며 목성의 대기, 자기장, 중력장 등을 관찰해 내부구조를 밝히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앞으로 주노가 수행할 임무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태양계에서 가장 강력한 오로라를 관측하는 일이다. 목성은 태양계의 어떤 행성보다도 강력한 자기장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극지방의 오로라 역시 장대하다. 때로는 오로라의 규모가 지구 폭의 수배에 이를 정도다. 탐사선은 목성 자기장을 측정하고, 그리고 정확히 어떻게 오로라 현상을 유발하는지를 밝혀낼 것이다.

주노가 밝혀낼 또 다른 하나의 의문이 있다. `목성에도 과연 핵이 있을까?`하는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질문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과학자들은 아직까지 목성의 아름다운 반점과 띠 아래에 과연 암석 표면이 숨어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대신에 높은 압력으로 대기의 주성분인 수소와 헬륨가스가 압축돼 아주 낯선 형태의 수소 핵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과학자들 주장이다.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목성에 물의 존재를 수색하는 일이다. 물의 존재는 목성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형성됐는지 뿐만 아니라 태양계 형성 초기의 조건이 어땠는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또 태양계 최대 행성인 목성이 아마 제일 먼저 형성되면서 어린 태양 주변의 모든 재료를 쓸어 담았을 수도 있다. 목성을 형성하는 재료들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인류가 우주의 비밀에 한걸음 더 다가 설 수 있도록 긴 시간을 달려온 주노.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주노의 임무가 멋지게 성공적으로 수행되길 염원해 본다.

글=김형근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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