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노믹스]<특별기고/ 데이비드 카포스 전 美 특허청장>FRAND 원칙이 기능을 상실했다는 오해

특허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프랜드(FRAND: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원칙이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프랜드 원칙은 법률 약어의 하나로 `공정, 합리 및 비차별`을 의미하며, 표준화기구(SSO)가 표준화 과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에게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라이선싱 의무다.

`공정`은 끼워팔기나 묶음판매와 같은 경쟁법 위반 행위가 아닌 `친경쟁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합리`는 합리적으로 산정된 특허 로열티를, `비차별`은 각 특허 실시자가 유사하게 대우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프랜드 원칙이 기능을 상실했다는 오해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 기반한다. 첫째, 표준특허(SEP)가 로열티를 과도하게 높게 설정하기 때문에 프랜드에 기반한 라이선싱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둘째, 표준화기구 창설은 프랜드 체제의 실효성을 감소시켜 왔다. 마지막으로, 프랜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업계 당사자 간 사적인 약정에 포함된 라이선스 조건에 대한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

◇ 프랜드 원칙은 특허 억류를 억제한다

사실 프랜드 원칙은 표준화기구가 특허 억류(Holdup)를 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프랜드 원칙은 혁신가와 실시자 양측의 금전적 이해를 적절히 고려하는 균형 잡힌 실시료율을 유지하게끔 한다. 오해의 주창자들은, 몇몇 법원들이 표준특허 소유자가 최초로 제시한 금액보다 낮은 실시료율을 인정한 사례를 인용하며 표준특허 소유자들을 공격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법원이 적절한 실시료율을 계산하기 위해 `표준특허 소유자가 프랜드 라이선싱을 확약한 것`을 그 근거로 삼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즉 프랜드로 인해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는 고압적인 규제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법원은 프랜드 확약을 `특허 실시자를 수익자로 하는 집행 가능한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여긴다.

이러한 관례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라이선스 협상에서 특허권자 행위는 통제가 된다. 결국 프랜드는 정확히 의도된 대로 기능해 왔다. 대다수 표준특허가 억류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법원이 잘못된 표준특허 조치를 효율적으로 정정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화웨이와 ZTE 간 특허 소송에서 유럽사법재판소(ECJ)는 프랜드 라이선스와 관련된 표준특허 분쟁을 규율하기 위해 엄격하면서도 균형 잡힌 실제적 기준을 수립했다. ECJ가 제시한 기준은 자동적인 금지명령에 치우치지도 않고 이를 배제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판결은 표준특허 소유자와 특허침해 혐의자 모두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ECJ는 시장지배적 표준특허 소유자가 경쟁사를 상대로 특허권을 행사하고자 할 때, 먼저 특허침해 혐의자에게 어떤 특허권이 연관돼 있으며 각 특허가 어떻게 침해됐는지를 알리도록 한다.

이후 표준특허 소유자는 서면으로 프랜드 조건에 따른 라이선스를 제안해야 한다. 이에 대해 특허침해 혐의자는 표준특허 소유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곧바로 서면으로 프랜드 원칙에 부합하는 역제안을 하는 방식으로 성실하게 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만약 표준특허 소유자가 역제안을 거부하면, 특허침해 혐의자는 특허 로열티 지급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고 문제되는 표준특허 사용 내역을 제공해야 한다.

최근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은 ECJ가 화웨이 판결에서 제시한 기준을 시스벨 그룹과 하이얼 그룹 간 소송에 적용했다. 뒤셀도르프 법원은 표준특허 소유자인 시스벨 그룹이 적절한 방법으로 하이얼 그룹에 특허권 침해 혐의를 알렸고, 프랜드 원칙에 부합하는 라이선스를 제시한 후 하이얼의 역제안을 선의로 거절한 것으로 판단했다. 화웨이 판결의 기준에 따라 법원은 하이얼 그룹이 시스벨로부터 역제안이 거절된 후 한 달 이내에 특허실시료 지급에 대한 담보와 표준특허 사용에 대한 회계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금지명령을 인정했다.

독일 법원의 적용사례에서 볼 수 있듯, ECJ가 제시한 형평을 고려한 기준은 양자 중 누구든 `면책` 해주거나, 어느 일방을 자동적으로 `악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한 특허가 표준에 필수적이라고 공표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해당 특허가 무가치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혁신가에게 주게 되는 상황도 현명하게 피해 갔다.

◇ 프랜드의 `공정`은 `모두가 동일한 조건`이 아니다

프랜드 원칙이 기능을 상실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그들은 특허 라이선스 조건 공개가 시장 경쟁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한다. 사실 프랜드는 모든 특허 실시자들이 동일한 조건을 적용받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동일한 처우를 받도록 요구할 뿐이며, 이는 적절하고 신중한 의도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정가를 치르고 컴퓨터 한 대를 사는 반면 컴퓨터 50대를 구매하는 사업체는 물량 할인을 받는다. 이를 불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컴퓨터 한 대를 구입했던 사람이 컴퓨터 50대를 구매하고자 했을 때 동일한 할인을 적용 받을 수 있다면 공정한 것이다.

프랜드의 `공정`도 동일한 방법으로 기능한다. 특허 라이선스 조건은 관여 당사자와 그들의 사업관계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하며, 실제로도 다르다. 이러한 융통성은 거래관계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상거래는 유사 이래 오늘날까지 정보 비대칭 아래 운영돼왔다. 라이선스 조건 공개를 요구하면 경쟁사들이 서로의 가격 정보와 그외 민감한 거래 조건에 대해 알게 된다. 이는 결국 반경쟁적 폐해에 혁신가와 실시자 모두를 노출시키는 셈이다. 협상이 공정하고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계약 내용의 비밀유지가 필요하다. 정책 입안자들은 오랫동안 유지돼 온 건실한 거래원칙에 반할 것을 요구 받았을 때는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사실 현 체제는 각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조정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표준화기구들은 유력한 구성원을 확보하고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표준을 개발하기 위해 상호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표준화기구로 하여금 기회주의적 행동을 억제하고 특허권자와 실시자를 포함하는 모든 구성원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프랜드 체계를 채택할 유인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어떤 특허권자가 기술 실시자를 착취하고자 한다면, 그 특허권자의 차세대 기술은 해당 기술 작업반은 물론 잠재적으로는 다른 표준화기구로부터도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

더불어, 협상에 참여하는 양측은 사후 손해배상보다는 합리적인 라이선스 협약을 체결할 상당한 장기적 유인을 갖는다. 라이선스 약정은 다차원적 협약이다. 이는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장기적 혁신 파이프라인의 지원에 필요한 권리와 구제조치, 유인책을 마련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현실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자본조달, 제품 개발, 설계, 시험, 제조, 마케팅, 판매에 이르는 다양한 과정이 필요하다. 발명을 구상 단계에서 상업화까지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능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핵심적인 혁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약과 이로 맺어진 관계는 피고용자에게 전문 일자리를, 조직에는 귀중한 인적 자원을, 그리고 사업 파트너에게는 연구나 공학기술, 제조, 마케팅, 유통과 같은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다면적 라이선싱 관계가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은 어떠한 손해배상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더 많은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탁월한 사업 역량을 보유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금전 배상으로는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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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카포스 전 미국 특허청장 dkappos@crava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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