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미국과 독일은 경쟁력이 약한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며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영국에 맞서 보호무역을 강조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 수입을 억제한 것이다. 보호무역은 자유무역과 대척점에 서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일찍이 국제분업 원리를 적용해 자유무역을 주창했다. 한 나라가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수출하고, 생산비가 많이 드는 제품을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하면 두 나라 모두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비교우위론`이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 경제는 이러한 자유무역에 기초, 번영을 이뤄왔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세계 경제가 저성장에 신음하면서 다시 보호무역이 고개를 들고 있다. 18세기 보호무역에 이은 이른바 `신보호무역` 움직임이다.
특히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다른 나라와 맺은 FTA(자유무역협정)를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신보호무역주의가 세계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는 수출이 활발한 다른 나라에 대해 “미국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와 맺은 무역 협정을 폐지하거나 다시 맺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역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자유무역을 옹호해왔던 힐러리 클린턴 미 민주당 대선 후보도 트럼프보다 강도가 약하지만 미국 경제를 위해 어느 정도의 보호무역 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혔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세계서 가장 부유한 국가인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깃발을 내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세계 교역량은 갈수록 줄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부상한 신보호무역주의가 영향을 미쳤다. 영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지난 7월 말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세계 교역량이 증가세를 멈추고 정체기에 들어갔다”면서 “교역량이 15개월 연속 정체된 것은 베를린 장벽 붕괴(1989년)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교역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예외 경우를 제외하면 조금씩이라도 증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CEPR은 “그동안 교역량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경고했으나 현재 상황은 증가세가 둔화한 게 아니라 아예 증가를 멈춘 것”이라면서 “원자재 가격 약세나 달러 강세만으로는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최근 1년 사이 세계 각국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진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신보호무역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스텔스 보호무역(stealth protectionism)`, `바이 내셔널(buy national)`과 같은 신조어도 등장했다. 스텔스 보호무역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관세장벽이 많아지고 있는 걸 뜻한다. 바이 내셔널은 정부 조달 부문을 중심으로 자국산 제품을 쓰거나, 인프라 건설 때 자국산 원자재와 인력을 쓰도록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등에서 보호무역 움직임이 다시 대두한 것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 부진으로 `국가 내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소득 불평등이 확대된 이유는 기술 진보, 인구구조 변화, 글로벌 저성장 등 복합적으로 연계돼 있다.
신보호무역주의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 간 WTO 회원국이 취한 신규 무역규제 조치는 총 154건으로 2011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무역 규제도 상당수 들어 있다.
물론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7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가 주요 의제였다. 회원국들은 “모든 형태 보호주의를 배격한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설립자가 미국 대선 주자들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을 비판하며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는 주장들은 현대 미국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이야 말로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세계 경제가 어렵다보니 보호무역주의 경계를 합창할 뿐 저마다 속으로는 나부터 살고보자는 `각자도생` 움직임이 뚜렷하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우리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는 보호무역주의가 결코 달갑지 않다. 세계교역 둔화와 보호무역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비해야 한다.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무역에 집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