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8> 삼성은 스택, 현대는 트렌치… 엇갈린 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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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현대, 금성의 4M D램 실물(사진 : ETRI).

1988년은 4M D램의 개발 성공 소식이 한창 들려 오던 시기였다. 당시 4M D램은 일본 도시바와 히타치, 미국 IBM 등 세계에서 7~8개 업체만이 개발에 성공한 상태였다. 한국에선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를 주축으로 1986년 10월 반도체연구조합을 결성, 4M D램 공동 개발을 시작했다. 무려 879억원의 연구개발(R&D)비가 투입됐다. 삼성, 현대, 금성이 이 개발 과제에 참여했다. 그러나 사실상 각사가 따로따로 개발을 진행했다는 것이 당시 이 과제에 참여한 기업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성과도 갈렸다.

1M D램까지는 칩의 평면에 셀을 더 많이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4M D램부터는 집적도를 높이기 위한 입체 설계 기술을 적용해야 했다. 웨이퍼 표면을 파내 아래쪽에 새로운 층을 만들고 셀을 더 많이 집적하는 트렌치 공정과 층을 쌓아서 셀을 더 집어넣는 스택 공정 둘 가운데 하나가 후보군으로 올라와 있었다.

트렌치 방식은 다소 안전하기는 하지만 밑으로 파낼수록 회로가 보이지 않아 공정이 까다롭고 경제성이 떨어졌다. 스택은 작업이 쉽고 경제성이 있지만 품질 확보가 어려웠다. 미국과 일본의 선발 업체도 어느 기술을 택할지 명확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진대제·권오현 박사는 이건희 회장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트렌치는 하자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이지만 스택은 아파트처럼 위로 쌓기 때문에 그 속을 볼 수 있습니다. 트렌치는 검증할 수 없지만 스택은 검증이 가능합니다. 이 점이 핵심 차이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주요 기업이 트렌치 방식을 선택하자 내부 혼란이 더 커졌다. 이 회장은 스택 방식으로 갈 것을 지시했다. 이 회장이 직접 저술한 서적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이 소개돼 있다.

“나는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화해 보려고 한다. 두 기술을 두고 단순화해 보니 스택은 회로를 고층으로 쌓는 것이고 트렌치는 지하로 파 들어가는 식이었다. 지하를 파는 것보다 위로 쌓아올리는 것이 수월하고, 문제가 생겨도 쉽게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삼성전자 40년 역사를 담은 사사(社史) `도전과 창조의 유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스택 방식이 맞을 것이라는 감은 있었지만 내 자신도 100% 확신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1988년 2월 스택 방식으로 4M D램 개발에 성공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결정이 옳았음이 입증됐다.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업체는 대량 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율 하락을 경험했고,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업체는 스택 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전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현대는 끝까지 트렌치 구조를 고집하다 4M D램 개발에서 난항을 겪게 된다. 결국 1988년 3월 국책 개발과는 별개로 스택 구조의 4M D램 개발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윤희구 전 현대전자 반도체연구소 이사는 훗날 16M, 64M D램 개발에 성공한 후 4M D램 개발 실패를 인정했다.

“4M D램 공동개발 사업에서 기간 안에 종료하지 못하고 3사 가운데 맨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는 수모를 씻고서 현대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 4M D램 개발에서 홀로 낙오한 현대 개발팀의 원수를 갚아 줘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가 있었다.”

삼성전자는 스택 방식을 선택한 덕분에 4M D램 개발 경쟁에서 선두 업체와의 격차를 상당히 좁힐 수 있었다. 완전하게 독자 개발한 16M D램은 선두 업체들과 동시에 신제품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특히 양산 시점은 선두를 뛰어넘어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쾌거를 이룩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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