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7> 현대의 도전과 시련… 독자 S램 프로젝트 실패

경기도 이천 반도체 공장 부지 확보부터 어려움을 겪은 현대전자는 첫 개발 프로젝트에서 고배를 들이켰다.

현대전자는 해외 기업과 기술 도입 계약 없이 S램을 독자 개발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웠다. 당시 시장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D램 생산에는 세계 유명 반도체 기업이 포진해 있었다. 일본이 강세를 보였다. S램으로 특화 시장을 노리겠다는 것이 현대의 전략이었다. 삼성과는 방향이 달랐다. S램은 중앙처리장치(CPU)의 캐시(임시) 메모리로 쓰이는 제품이다. D램에 비해 속도가 빠르지만 용량이 적고 값이 비싸다. 설계, 생산도 더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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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6일. 국내 최초로 16K S램 시험생산에 성공.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현대전자 연구원의 모습.

현대전자는 1984년 12월 16K S램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그러나 판로 확보에는 실패했다. 현대전자 사사(社史)인 `현대전자 10년사`는 첫 S램 프로젝트 실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S램은 기술적으로 D램보다 어려운 것이어서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최고경영진은 우선 생산공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D램 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체 개발은 이미 늦었다. 외부 설계 도입과 하청생산을 모색한 이유다.”

현대전자는 1985년 2월 영국 인모스에 600만달러를 제공하고 256K D램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인모스와의 협력마저도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만다. 당시 인모스는 S램 생산에 주력했다. 256K D램 제조 기술 역량은 부족했다. 결국 현대전자는 1985년 8월 인모스와 기술 제휴를 파기하는 동시에 은밀히 바이텔릭과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바이텔릭은 현대전자에 16K S램, 64K D램, 256K D램, 1M D램 제조 기술을 제공했다.

이미 삼성은 1984년 10월 독자 기술로 256K D램 양산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금성반도체도 1985년 6월과 11월 각각 미국 및 일본에 이어 64K S램, 1M 롬 개발에 성공했다. 현대전자 경영진은 국내 경쟁사 대비 역량이 뒤처졌다는 평가에 애가 탔다. 그러나 우직하게 사업을 이끌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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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자가 국내 최초로 양산에 돌입한 CMOS 256K D램

성과는 이듬해에 나오기 시작했다. 1986년 5월 8일 현대전자는 CMOS 공정으로 256K D램 양산에 성공했다. 당시 국내 D램 생산 업계는 CMOS가 아닌 NMOS 공정을 활용했다. CMOS는 NMOS 대비 전력 소비가 적고 처리 속도가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현대전자의 CMOS 256K D램 양산 사례는 국내에서는 최초, 세계에서는 일본 히타치에 이어 두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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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5월. 현대전자 256K D램 150작전 결의대회.

현대는 뚝심을 발휘했다. 8월 15일까지 100일 동안 `150작전`에 돌입했다. 1은 100일, 50은 수율 50%를 각각 의미했다. 150작전은 7월 8일 52%의 수율을 달성하며 성공리에 조기 종료됐다. 이에 앞서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와 맺은 64K D램 파운드리(위탁생산) 계약은 현대전자 공정 기술이 크게 향상되는 도약의 계기가 됐다. 현대전자는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가능성`으로 치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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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현대전자는 반도체 생산 기술을 습득하고 규모의 경제를 위해 미국 TI 사와 파운드리 생산공급계약 체결했다. 사진 오른쪽이 정몽헌 당시 사장.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사장은 1986년 9월 발행된 현대전자 사보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CMOS형 256K D램을 생산하는 회사가 세계에서 단지 한 곳(히타치)에 불과하므로 현대전자는 이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미래 공정을 조기 확보한 것입니다.”

이병철 삼성 회장과 자존심 대결을 펼치던 정주영 현대 회장도 그해 특별강연을 통해 반도체 등 전자산업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우리나라 어떤 선발 전자업체의 회장(이병철 삼성 회장을 지칭)이 `일생의 모험`을 건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모험을 건다고 생각 안 합니다. 이것은 뚜렷한 현대그룹의 발전이고, 이 나라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1984년 현대전자에 입사해 정몽헌 회장 비서로 재직한 권오철 SK하이닉스 전 사장은 이 무렵의 현대전자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정몽헌 당시 사장을 모시고 서울과 이천을 자주 오갔다. 당시 현대전자는 한 번 가면 새로운 건물이 세워져 있고, 또 한 번 가면 새로운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성장하는 회사였다. 중후장대한 사업만 해왔던 현대그룹이 마이크로한 전자산업에 도전한 상황이라 기대와 우려가 오갔지만 경영진과 현대전자 직원은 열정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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