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7> 반도체 등불을 켜다… 삼성, 64K D램 6개월 만에 개발

삼성은 첫 반도체 사업 품목으로 D램을 지목했다.

이병철 삼성 회장은 불황 시 대규모 적자를 각오해야 하지만 삼성의 양산 능력을 결합하면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품목이 D램이라고 판단했다. 이때가 1983년 4월이다. 한 달 전 삼성은 그룹 차원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2개월 뒤인 6월 삼성은 마이크론과 64K D램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마이크론은 계약에 따라 D램 설계도와 마스크(회로 패턴을 새긴 원판), 완제품 3000개를 삼성에 제공했다. 이들 재료로 진행한 시험 조립 생산은 성공했다. 작게나마 반도체 사업을 해 온 삼성이었기 때문에 단순 조립은 어렵지 않았다. 핵심 제조 공정도 완벽히 내재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현지 마이크론에서 기술 연수를 받고 있던 이윤우 연구소장(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목은 바싹 말라 있었다. 삼성 연수팀을 대하는 마이크론 연구진의 태도에서 매우 강한 적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 연구진은 삼성 연수팀을 `산업스파이`쯤으로 바라봤다.

“방문자 명단에 나머지 직원들 이름이 없습니다. 회사 안으로는 단 두 명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연수팀이던 조수인 과장(전 삼성전자 사장)을 포함한 6명은 마이크론 사내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모텔에서 묵으며 전해 듣는 얘기로 기술을 익혔다. 마이크론 연구진은 삼성 연수팀이 나타나기만 하면 질문은 받지 않고 도망만 다녔다. 기술을 숨기고 싶어한 것이었다. 정해진 동선에서 이탈했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싶으냐”며 멱살을 잡히는 수모도 겪었다. 기술 연수는 단지 계약서에 명시된 글귀에 지나지 않았다.

“이럴 거면 기술 이전 계약은 왜 했나. 더 이상 연수는 의미가 없다.”

이윤우 소장은 독자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 현지 삼성 법인의 이상준 박사와 이종길 박사, 국내 연구진으로 구성된 20명의 64K D램 프로젝트팀은 생산 공정 기술을 하나둘 개발하기 시작했다. 309가지 제조 공정 가운데 어렵사리 대부분 공정을 개발해 냈다. 하지만 미세 가공을 포함한 8개 공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꼬인 실타래 같았다.

Photo Image
삼성이 개발한 64K D램

마스크에 새겨진 설계 패턴을 실리콘 웨이퍼에 전사시키는 노광 공정에서 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어느 정도 두께로 발라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가스 주입 공정에선 시간 흐름에 따른 농도 변화로 불량품이 나오기 일쑤였다. 실행과 반복의 연속이었다. 시행착오는 계속 이어졌다. 감광액을 두껍게 바르면 패턴이 잘 새겨지지 않았고, 노광 공정 완료에는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얇게 바르면 패턴이 너무 깊숙하게 새겨지는 문제가 있었다. 가스 주입을 적거나 많이 하면 증착 막질이 떨어졌다. 지루하고 답답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사실 그때 삼성이 64K D램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80년대 초반에 국가반도체개발계획 수립 때만 해도 한국은 1986년쯤에야 64K D램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보다 3년이나 앞당겨 개발에 성공하는 것은 꿈같은 일로 받아들여졌다.

Photo Image
1983년 11월. 64K D램 개발 주역들.

꿈은 현실로 다가왔다. 1983년 10월 6일. 삼성은 마침내 모든 공정을 개발해 내고 웨이퍼를 투입하기에 이른다. 11월 7일 미흡한 몇 가지 공정을 보완하고 다시 제품을 뽑아 시험했다. 정상 작동이 됐다. 여러 번 테스트를 해 봐도 결과는 모두 정상 작동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성공했다며 `만세`를 외쳤다.

Photo Image
1983년 64K D램 개발 발표회

12월 1일 강진구 사장은 기자들을 불러 모아서 발표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삼성반도체통신이 6개월 만에 64K D램을 개발했습니다. 생산, 조립, 검사까지 모든 공정을 완전히 내재화했습니다. 미국, 일본과 10년 이상 기술 격차가 났지만 단숨에 이 격차를 4년 정도로 좁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날 국내 매체는 삼성의 64K D램 개발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이 소식은 외신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전해졌다. 개발 어려움으로 D램 사업 진출을 망설이고 있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경악했다. “한국이 그걸 해낼 수 있겠느냐”고 비아냥대던 미국과 일본은 충격에 빠졌다. 이들 국가는 “삼성이 이른 시간 내 우리를 추격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을 나타냈다.

삼성의 64K D램 개발은 비록 마이크론으로부터 설계 도면을 들여오긴 했지만 309가지에 이르는 공정 프로세스와 조립, 검사 기술을 단 6개월 만에 독자 기술로 해냈다는 점에 큰 의의를 둘 수 있다. 이는 반도체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사건으로 기록된다.

Photo Image
1984년. 삼성 64K D램 해외 첫 출하 기념식.

이종덕 서울대 교수는 “삼성의 64K D램 개발 성공은 기술의 `빅점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기술 선진국을 앞서게 된 것이 4M에서 16M D램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이는 64K D램 개발 성공이 기반이 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삼성반도체통신은 64K D램 개발 성공 이후 3개월여 만인 1984년 3월 256K D램 개발에 착수했다. 256K D램은 당시 생산되고 있던 반도체 가운데 집적도 최고 제품으로, 일본 NEC와 후지쓰 및 미국 인텔 등 몇 개 업체만 생산하고 있었다. 용량은 64K D램의 4배지만 공정 개발의 어려움은 그 이상이었다. 개발팀은 64K D램 개발에서 얻은 경험과 자신감으로 설계 착수 7개월 만인 1984년 10월 양산에 성공했다.

Photo Image
1987년 12월. 삼성전자는 `꿈의 반도체`로 불렸던 1M D램을 해외에 첫 출하한다.

1986년 7월 삼성반도체통신은 당시로선 `꿈의 반도체`로 여겨지던 1M D램의 자체 개발에 성공한다. 256K D램 개발 이후 1년 반 만에 거둔 성과였다. 설계에서 공정 기술까지 완벽하게 독자 기술로 개발한 것이었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대놓고 견제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즈음이다. 기술 강자 인텔은 삼성의 1M D램 개발이 한창이던 1985~1986년에 백기를 들고 D램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