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불거지는 외국계 기업 SW 분쟁..저작권인식 vs 글로벌업체 갑질 공방

소프트웨어(SW) 저작권 문제를 둘러싼 외국계 기업과 국내 사용자 간 분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외국계 기업은 국내 기업의 SW 저작권 인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국내 사용자는 외국계 SW 기업이 저작권을 빌미로 `저작권 장사`를 한다고 지적한다. SAP와 한국전력공사 사례를 시작으로 외국계 기업과의 SW 저작권 논쟁이 다시 한 번 거세질 전망이다.

그동안 외국계 SW 기업이 저작권 문제를 이유로 국제 분쟁까지 진행한 사례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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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가 한국전력을 상대로 SW저작권 불법 사용 문제를 제기했지만 소송까지 가지 않고 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한전 본사.

외국계 SW 기업이 국방부, 경찰청 등 정부 부처를 상대로 SW 불법 사용 문제를 제기했지만 대부분 합의로 마무리됐다. 국내에서 계속 영업하는 외국계 SW 기업 입장에서 고객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SAP와 한전 간 분쟁이 주목받는 이유는 외국계 SW 기업이 최대 고객을 상대로 국제 중재까지 요청했기 때문이다. SAP는 지난해 서울지방법원 소송도 조용히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요청 건은 SAP 본사에서 직접 진행한다. 국내 최대 고객이지만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SAP는 한전 문제를 제대로 매듭짓지 않으면 제2, 제3의 한전 사례가 나온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SAP뿐만 아니라 외국계 SW 기업 대부분은 국내 고객사의 SW 정품 사용 인식이 낮다고 주장한다. 한전처럼 SW 감사를 10년 동안 한 차례도 받지 않은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전 역시 감사를 받고 투명하게 SW 내역을 공개하면 국제 분쟁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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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외국계 기업은 고객사가 정품 SW를 사용한다면 감사를 통해 투명하게 SW 내역을 공개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감사를 한두 해 실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SW 불법 사용이 줄어 고객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외국계 SW 기업 임원은 “보통 다른 나라 고객은 10개사 가운데 7개사가 1년에 한 번 감사를 받지만 국내는 고객 10개사 가운데 2개사 정도만 감사에 응한다”면서 “투명 경영을 강조하면서 정작 SW는 불법으로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SW를 도입한 기업은 외국계 SW 기업이 감사를 핑계 삼아 조직 차원에서 SW 저작권 문제를 제기한다고 주장한다. 감사 역시 일관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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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기업로고

이번 SAP와 한전 사례 역시 2005년 계약 초반에는 감사를 3년 동안 진행하지 않는다고 계약했지만 이후에는 1년에 한 번 받는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전사자원관리(ERP),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운용체계(OS), 캐드 등 주요 SW를 외국계 기업이 독식하는 구조여서 오히려 갑과 을이 바뀌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게 국내 사용자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툭하면 SW 감사를 요청해선 처음에 구매할 때 없던 기능을 불법 사용하고 있다며 추가 금액을 요구한다”면서 “정당한 가격을 내고 제품을 구매했는데 죄인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SAP와 한전 분쟁뿐만 아니라 외국계 기업과 국내 기업 간 분쟁은 터지지 않은 뇌관이다. 업계는 분쟁이 계속 늘 것으로 내다봤다.

한 기업의 SW 구매 관계자는 “겉으로 조용하지만 외국계 SW 기업과 SW 저작권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는 국내 기업이 적지 않다”면서 “한전 사례처럼 국제 분쟁까지 가는 경우는 없겠지만 크고 작은 소송은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