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형제의 시집 출간 화제, '길이 우리를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

한국 시문학사에서 흔치 않은 시인 형제의 시집이 출간돼 화제다.
평생을 함께하는 시의 도반이면서 또다른 개성의 시인 라이벌이기도 한 박용재-용하 시인이 '길이 우리를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164p. 문학세계사)를 냈다.
둘의 에피소드가 재밌다.
형 박용재 시인은 동생(용하)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쓴 습작시를 제목과 이름만 남기고 거의 모든 구절을 펜으로 뭉갰다. 박용하 시인은 이를 회상하며 "지금 내가 몰락하지 않고 이렇게 버티고 있는 데는 형의 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라는 걸 내 몸은 새기고 있다"고 말한다.
박용재 시인은 "각자 자기 시집을 내면 그 시집만 평가받으면 되는데 이거 동생하고 한 시집에 시를 같이 실어 놓으면 아 뭐 박용하 형 박용재도 시인이었구나, 아 그랬구나 할 거 아닌가"라며 불편한 속내를 밝힌다.

Photo Image

한국 시문학사에서 형제가 시인으로 함께 활동한 경우는 흔치 않다. 서정주-서정태 시인, 김종문-김종삼 시인, 김종해-김종철 시인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형제 합동 시집은 2005년 출간된 김종해-김종철 시인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문학수첩) 정도이다.
이번에 형제시집으로 함께 묶인 박용재-박용하의 시집은 구성 역시 특별하다. 형제 시집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특별한 것이겠지만, 수록된 작품들 내용도 그렇다.
박용하 시인의 동시 5편을 포함해 등단 전 미발표 시 4편과 등단작 2편 등 시인의 초기작 그리고 박용하 시인이 뽑은 박용재 시인의 시들과 신작시 그리고 어린 시절 쓴 동시를 함께 묶었다. 형제 시인의 시편들을 같은 자리에 놓고 함께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그러니까 매순간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매순간 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날아야 한다
매순간 심장을 날아야 한다
그러니까 심장을 날기 위해선
매순간 사랑해야 한다....'
<박용하, '행성' 중>

'시골집 작은 언덕에는 큰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모과나무는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할머니는 모과나무에 꽃이 피면 모과나무꽃을 마치 신을 모시듯 바라보며 기도를 했다.
어느 날 하도 심심하여 모과나무꽃을 따서 무덤가에 핀 할미꽃과 패랭이꽃 주위를 동그랗게 울타리를 쳐주며 놀았다. 이 광경을 본 할머니가 이 꽃이 어떤 꽃인데, 이 꽃이… 어떤 꽃… 할머니는 모과꽃을 쓸어안고는 할미꽃 봉오리 같은 눈물을 흘렸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분노 섞인 눈물이었다.
난 영문도 모른 채 놀다만 자리를 어머니가 사 준 운동화 신은 발로 글그적거리며 먼 들판만 멍하니 바라보다 할머니가 언덕을 내려가자 죄책감에 칡넝쿨을 뜯어 모과나무 가지에 모과꽃을 다시 붙여 놓았다. '
<박용재, '모과나무꽃'>

강원도 동해안 사천 바닷가는 박용재, 박용하 두 시인의 고향이다. 이 두 시인의 시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중 포구에 대한 이미지는 두 시인에게 빈번히 나타나는 이미지다. 이미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이런 풍경들은 박용하에게서는 이미지의 전도 현상을 보이고, 박용재에게는 결코 잃을 수 없는 원형으로 자리잡는다. 초등학교 때 쓴 박용재의 뛰어난 동시들은 성인이 된 후에 쓴 시의 원형을 이루기도 한다.

 


문학세계사 김진 편집장은 "이번 형제 시집은 원초적인 형제의 상실감을 언어의 제단 위에서 하나하나 메우고 회복시켜 낸 좋은 사례이자 독자에게는 소중하고 애틋한 목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나성률 기자 (nasy23@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