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흐름을 살펴보면 초기 단계에서는 국가 체계를 만들고 룰과 원칙에 의한 국가 운영을 위해 법학이나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국가 리더 자리를 주로 차지했다. 이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중진국에 진입하면 경제 활성화에 필요한 경제학, 경영학, 신문방송학 등 전공자들이 국가 리더군을 형성한다. 이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 주도권은 더 이상 선진국 카피 모델만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창의 사고와 혁신 아이디어 창출에 바탕이 될 수 있는 철학, 심리학, 역사, 문학, 미학 등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제4차 산업혁명이 도래되는 지금, 그리고 3만달러 시대 진입을 위한 솔루션이 필요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리더가 필요한 시점일까.
최근 들어 인문학이 뜨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때가 되어 주목받는 것이다. 그 가운데 고전은 빛을 발한다. 이유는 명백하다. 고전은 역사의 선택을 받은 인간들의 정신 산물이자 특정 시대나 특정 문제를 넘어선 본질의 지혜다. 수백년에서 더 멀게는 수천년을 지나는 동안 이 별 지구를 지나간 천재들의 지식, 철학 의식, 영성 향연이 그곳에 농축돼 있다. 기계를 만든 인간이 기계에 장악당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인류가 배출한 천재들의 연합군은 우리에게 어떤 기계문명 앞에 서더라도 안도감을 준다.
기술 차별점이 기업의 가치를 제공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기술 격차가 점차 좁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변별력 없는 기계문명 기술들을 어떤 가치로 재탄생시킬 것인가가 곧 미래 기업의 가치가 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혁신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는 “대학 시절에 수많은 동양 고전철학을 접했다. 이를 통해 새롭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애플이 창의 제품을 만든 비결은 항상 기술과 인문학 교차점에 있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 경영진 또한 고전을 통한 `인문학 발상`이 자신들의 성장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1969년 400만달러로 시작해 1989년까지 20년 동안 연평균 34%의 이익률을 기록하며 해지펀드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런 그의 전공은 우리의 막연한 예상을 뒤엎고 철학이었다. 소로스의 스승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 카를 포퍼다. 이 밖에도 경이로운 성과 창출을 일궈 낸 세계 금융계 인사 상당수가 인문학 전공자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인간이 인공지능(AI),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기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집약된 정보의 검색이나 분석을 뛰어넘는, 파괴력 강한 상상력과 직관력을 발휘하는 영성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고하는 교육 시스템이 정착돼야 하고, 시나리오 없는 생생한 토론 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인간을 능가하는 스마트한 기계를 통제하기 위해선 알고리즘화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인간의 사고력이 진화해야 한다. 결국 그런 사고력을 갖춘 사람이 많은 나라가 미래 주도권을 거머쥘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길 두려워하고, 두려움 앞에 패기와 열정을 잃어 가고, 그래서 더 이상 치열하게 사고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많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아무리 인문학 책을 쌓아 놓고 읽어 내려간다 해도 즐비한 지식의 쇼윈도 앞에 자신만의 독창 사고력으로 이 모든 지식을 융합시키지 못한다면 지금의 인문학 열풍은 또 하나의 껍데기가 될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서 주도할 무언가를 상상하고 실현하기 위해 수백년을 관통한 지혜의 인사이트를 우리 DNA에 내재화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가 치열하게 인문 고전과 씨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인문 고전의 정신과 철학을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테르텐 대표 kovwa@kovw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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