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대개혁]<4>프로젝트 공화국… `PBS` 제도의 딜레마

`프로젝트 공화국.`

정부 출연 연구기관(출연연) 현실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정부 출연금의 인건비 지원 비중은 2015년 기준 52.8%다. 연구원 1인당 평균 과제 수행 건수는 2013년 기준으로 1인당 4.5개다. 연구원 한 명이 1년에 평균 4~5개의 과제를 맡고 있다는 뜻이다.

Photo Image

출연금에서 지원되는 인건비 비중이 50% 수준에 정체돼 있다 보니 연구원은 당장의 인건비 확보를 위해 각 부처 `연구과제중심제도`(PBS) 과제 수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PBS로 대표되는 연구 환경문화가 문제다.

연구원은 인건비 확보를 위해 대학, 기업, 타 출연연과 과제 수주 경쟁을 해야 한다. 인건비 충당을 위해 과제 규모를 키워야 하고, 이는 불필요한 장비 구입 등 연구비 규모를 부풀리는 역효과까지 불러들이고 있다. 연구에 몰두해야 할 연구원들이 과제 제안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다반사다.

연구 과제에 사활을 거는 것은 인건비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연구 과제 건당 인건비 20% 이내에서 연구수당을 지급한다. 과제를 많이 수주하는 연구자는 기관에 돈을 벌어 줄 수 있다.

A 출연연 관계자는 “기관 예산 확보 차원에서 연구 성과보다 과제 수주를 잘하는 사람이 경쟁력 있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평가도 과제 수주 건수가 좌우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연구 성과와 상관없이 과제를 많이 수주하면 연구수당 등에서 보상을 받는 맹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일단 과제 수주에만 사활을 걸고 연구 성과를 내려는 노력을 등한시하는 사례가 많다.

문제는 정부 과제의 경우 대부분 단기 프로젝트가 많다는 것이다. 정책 차원에서 마련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시류를 타기 때문이다. 기술 유행을 좇는 연구, 쉽게 단기 성과가 나는 연구 과제가 양산된다. 중장기 프로젝트나 범국가 차원에서 도전해 볼 만한 대형 프로젝트를 공론화하고, 도전하지 못하는 현상이 빚어진다.

출연연 간부 출신인 B씨는 “과제 성공률을 높여야 다음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진행할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개발하기 쉬운 과제에 매달리고, 결국 출연연 과제 성공률이 98% 이르는 기현상이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이 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성실도전 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NST 융합연구사업 가운데 `창의형 융합연구 사업`부터 올해 안에 시범 적용한다.

◇PBS의 명암

PBS 제도는 출연연 예산제도로 20년 가까이 활용돼 왔다. PBS는 연구사업 기획, 예산 배분, 수주·관리 등 연구관리 체계에서 연구나 사업 과제 같은 프로젝트 단위 중심의 경쟁체제로 운영·관리하는 제도다. 출연연 연구비 지원에 경쟁 개념을 도입, 연구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로 1996년에 도입됐다. 창의성을 살리고 능력에 따라 급여를 지급한다는 게 당초 취지다. 출연금 대비 PBS 예산 비율이 50대 50이라면 연구자 평균 급여는 정부에서 50%만 보장되고 나머지는 연구자들이 직접 기관 외부에서 프로젝트를 따와야 자신의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다.

PBS 장단점은 명확하다. 장점은 경쟁체제로 인한 단기 연구 효율성 증가다. PBS 도입으로 단기 연구 성과 제고와 경쟁체계 도입으로 연구의 경쟁력과 효율성이 강화된다. 연구자 간 경쟁을 유발, 더 나은 연구 과제 선정을 가능케 한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비 집행·관리의 투명성 향상, 연구 과제 책임자의 책임성·권한 강화도 있다.

단점은 과도한 과제 수행에 따른 중장기 도전 과제 위축과 연구의 질 저하다. 중장기 및 도전성 연구가 위축됐다는 점이다. 인건비 확보로 연구자의 과제 분산 참여와 질 저하가 발생하고, 단기 성과 창출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경향이 커진 셈이다.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출연연의 비정상화 원인 분석` 보고서에서 연구책임자가 과제를 따내지 못하면 자신의 급여와 연구팀원의 인건비를 줄 수 없다는 단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 안정된 연구 위해 인건비 비중↑

출연연은 PBS 제도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송철화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이하 연총) 회장은 “출연연이 산업화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지만 고유 미션에 의구심을 갖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현재 모습은 융합성과 개방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 회장은 “R&D 집단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PBS 제도가 20년 동안 적용되면서 인건비 확보를 위해 R&D가 아닌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단기 성과 생산을 요구 받으면서 산·학·연 간 차별화가 되지 않고 있다”면서 “출연연의 두 발목을 죄고 있는 두 족쇄인 PBS와 기타 공공기관 해제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문제점이 지적되자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지난 5월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11개 출연연의 출연금 인건비 비중을 올해 60%에서 2018년 70%로 높여 PBS 과제 수주 경쟁 대신 원천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출연금 인건비 비중 70% 미만인 11개 기관의 출연금 비중을 70%까지 올린다. 연구수당 문제 개선을 위해 기관이 연구수당을 통합·관리하는 연구수당 풀링제도 도입한다.

그러나 예산 확보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미래부 관계자는 “출연금 비중 확대를 위해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