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곳 중 11곳 규정 만들어…노사합의로 1년 늘린 셈
정부 출연 연구기관(출연연) 정년은 `61.99`년이다. 61세를 채우고 62세 생일 전날에 퇴직하는 조항이다. 정부가 정년을 61세로 제한하자 생긴 정년 계산법이다. 65세까지 정년을 늘려 주는 우수 연구원 선발 제도는 연장자가 독차지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19일 전자신문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출연연 25개 기관의 정년 규정을 분석한 결과 25곳 가운데 11곳이 2014년부터 올해까지 `노사 합의`로 만 61.99세 퇴직 규정을 통과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61.99세 퇴직 규정은 정년자가 만 62세가 되기 `직전 생일이 도래하는 날`에 퇴직하는 규정이다. 이렇게 되면 62세를 하루 앞두고 퇴직할 수 있다.
11개 기관은 규정을 바꾸기 전에 퇴직자를 상·하반기에 나눠서 퇴직시키거나 연말에 한 번 퇴직시켜 왔다. 예를 들면 생일이 1~6월인 사람은 6월 말, 7~12월이면 12월 말로 나눠서 퇴직시켰다. 또는 12월 말에 일괄 퇴직시켰다. 공무원은 상·하반기로 나누어 퇴직한다. 일반 기업도 이런 관례를 따르고 있다.
출연연이 노사 합의로 정년을 사실상 1년 늘린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이전에 정년 65세 제도가 사라지자 자구책으로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출연연은 IMF 이전으로 돌아갈 것으로 지속 요구했으나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IMF 체제 이전에는 책임급 65세, 나머지 직급은 61세가 정년이었다. IMF 이후 책임행정원·책임연구원 이상은 61세, 선임연구원·선임행정원·기능직 등은 58세였다. 현장 반발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2014년 이를 61세로 일원화시켰다.
정년 61.99세 규정을 도입한 기관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안전성평가연구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이다.
올해도 61.99세로 정년을 연장하려던 일부 출연연이 있었지만 전자신문 취재가 시작되자 잠시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우수한 성과를 낸 연구원을 대상으로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해 주는 `우수연구원 제도`도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수 연구원은 전체 정규직 연구원 정원의 10% 이내에서 운영하며, 매년 1.99%까지 선발할 수 있다. 우수연구원 제도 자체는 책임급 7년차부터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선발 대상자를 연장자로 한정하면서 고령의 연구원이 치열한 경쟁 없이 우수 연구원으로 선정되는 일이 발생했다.
우수연구원 제도를 도입한 18개 출연연 가운데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제외한 기관은 보통 `퇴직 3년 전` 연구자를 대상으로 우수 연구원을 뽑는다. 이렇게 되면 젊은 연구원들이 제외됨으로써 경쟁자 수가 확 줄어든다. 젊은 연구원을 배제시키고 정년퇴임 3년 전 연구자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정원 100명인 기관은 매년 1.99%인 2명 이내에서 우수 연구원을 선발한다. 퇴직을 3년 앞둔 연구자가 2명 이내면 대부분 우수 연구원으로 선발된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우수 연구원은 정년이 가까워진 시점의 연구원들을 평가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출연연의 셀프 정년 연장이 이어지면서 고령화로 시니어급 연구자가 젊은 연구원보다 많은 기형의 역피라미드 인력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정원이 한정돼 `신진 과학자`나 `신규 인력`을 뽑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평균 근속 연수는 2015년 기준 대기업이 11.6년이다. 반면에 출연연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에 따르면 에너지기술연구원 19.95년, ETRI 17.13년, 화학연 16.82년, 원자력연 16.45년 등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본인이 직접 우수 연구원을 신청하지 않아도 책임급 7년차부터 당연히 후보군에 오르도록 철도연의 `당연 신청제`를 벤치마킹해 다른 출연연에도 적용토록 할 것”이라면서 “이와 더불어 우수 연구원을 정원의 15%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