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장비업체가 미국과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 식각(Etch) 장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은 저가 장비에 머물러 있으나 공급 기반을 공고히 다지고 기술력을 높일 경우 시장 구도가 크게 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장비 업체 AMEC(Advanced Micro-Fabrication Equipment Inc)는 최근 SK하이닉스 3D 낸드플래시 양산 라인에 식각 장비를 공급을 성사시켰다. 이 회사 식각 장비는 이미 SK하이닉스 평면형 낸드플래시 라인에 상당한 양이 도입돼 있는 상태다.
AMEC는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출신인 제럴드 인이 2004년 창업한 회사다. 대부분 핵심 엔지니어가 어플라이드 식각 장비 사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총 임직원수는 6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법인인 AMEC코리아에는 26명 직원이 근무 중이다. 윤경일 AMEC코리아 대표 역시 어플라이드 출신으로 SK하이닉스와는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업체로는 삼성전자의 자회사 세메스가 식각 장비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세메스는 지난 몇 년간 식각 장비 연구개발(R&D)을 진행해왔다. 양산 장비 개발을 마친 후 지난해부터 관련 사업에서 매출이 본격 발생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선 지난해 세메스 매출(1조1189억원) 가운데 10% 이상 식각 장비에서 나왔다고 추정한다. 식각 장비는 세메스의 성장을 견인할 신규 사업 품목으로 여겨지고 있다. 세메스 식각 장비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라인에 깔린다.
식각은 증착 공정 후 웨이퍼 위로 얹어진 각종 박막을 화학적 반응으로 깎아내는 공정이다. 메탈 배선을 형성하기 위해 구멍(Hole)을 뚫거나 라인 패턴을 새길 때 식각 공정이 수행된다. 플루오린(불소) 계열 가스 재료를 활용한다. 정밀한 가스 컨트롤 능력과 온도 밸런스, 플라즈마 소스 제어 등이 핵심 기술이다. 더 작고 깊은 구멍을 뚫거나 더 좁은 패턴 간격을 지원하는 식각 장비가 고급이다. 세계 식각 장비 시장은 미국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 일본 도쿄일렉트론(TEL)이 장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도입한 세메스, AMEC의 식각 장비는 수율에 큰 지장이 없는 기초 식각 공정에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후발주자 장비를 구매하는 것은 선두업체(램리서치, 어플라이드)와 가격 협상력을 놓이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선두기업은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을 늦추기 위해 특허 소송으로 대응한다. AMEC는 어플라이드, 램리서치와 법적 공방도 벌였다. 한 관계자는 “세메스도 램리서치, 어플라이드의 특허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이들 미국 기업이 삼성전자에 장비를 파는 동안은 쉽사리 소송을 걸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