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공기청정기 필터 논란으로 인해 유해 화학물질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정수기에서 중금속이 검출, 파문이 일고 있다. 정부나 업계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소비자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일상생활 사용 제품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 화학물질·중금속 사용 제품 전반에 대한 안전대책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공기청정기 필터 유해물질 논란에 이어 정수기에서 중금속이 검출, 가전제품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관련기사 3면
최근 코웨이 얼음정수기 제품에서 중금속인 니켈 검출이 확인됐다. 코웨이는 즉각 사과문을 올리고 미량이어서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코웨이가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도 몰래 처리하려 한 것이 알려지면서 소비자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코웨이는 사과문을 통해 “검출된 성분이 니켈임을 인지한 후 외부 전문가 조언 등 다방면의 면밀한 검토를 바탕으로 해당 정수기 음용수에서 발생한 가능성 수준이 인체에 무해함을 확인했다”면서 “사전 점검과 제품 교환 등 개선 조치를 취해 97% 이상 서비스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코웨이는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인용해 “니켈은 내장 흡수가 적고, 흡수되지 않은 니켈은 섬유질과 함께 대변으로 배출된다”면서 “흡수된 니켈은 소변이나 땀 등 신체 분비물로 배출되는 것으로 보고됐으며, 식품이나 음용수로 섭취했을 경우 인체에 축적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부연했다.
공기청정기 필터에 유해물질 사용이 확인됐을 때도 해당 제조사는 검출된 양이 미량이어서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 차량에 사용하는 워셔액에 인체에 치명타로 작용하는 메탄올을 사용한 것이 확인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각종 제품에서 문제가 잇달아 제기되면서 소비자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제조사 해명 역시 충분하지 않다.
가장 큰 불안은 어떤 제품에, 어떤 유해 화학물질 또는 독성물질이 사용됐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제품이냐에 따라 소관 부처가 달라진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는 `먹는물관리법`에 따라 기본 업무인 정수기 관련 인증이나 성분 검토를 담당한다”면서 “하지만 얼음정수기는 일반 정수기에서 추가 기능이 들어간 복합기기로, 이에 대한 것은 식용 얼음을 관리하는 식약처가 주요 검사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융·복합 제품은 계속 늘어나는데 지금처럼 부처별로 흩어진 관리 체계 아래에서는 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늑장 대응도 문제다. 공기청정기 필터 논란이 제기되자 환경부는 곧바로 대응 방안을 마련해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조사 방법, 대상, 발표 시기 등은 오리무중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정부가 제도 운영을 부실하게 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관료들의 전문성 부족이 심각해 공기청정기를 형식으로만 검사하는 등 제품이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