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만큼 세계 시장 정상에 올라서지 못했지만 장비업계도 꾸준히 성장 중이다. 지난해 국내 장비업계에선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한 기업이 나왔다. 삼성 계열인 세메스가 주인공이다. 세메스는 2013년 후공정 장비 관계사인 세크론과 설비 개조 전문 지이에스를 인수합병(M&A)한 이후 종합 장비기업으로 성장을 지속 중이다.
지난해 6473억원 매출을 기록한 원익IPS도 오는 2018년 매출액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내부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케이씨텍, 주성엔지니어링, 피에스케이, 유진테크, 엘오티베큠, 한미반도체, 테스 등도 기술력으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과거에는 삼성이나 SK가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지으면 미국과 유럽, 일본 업체에 수조원에 달하는 장비 값을 지불했다. 반도체로 벌어들인 외화가 장비 값으로 고스란히 나간다는 자조적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진행된 산학연 연구과제와 각 회사의 노력으로 장비 산업 경쟁력은 계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1993년 8%에 불과했던 장비 국산화율은 2007년 20%까지 올라왔다. 최근에는 이 수치가 집계되지 않으나 25~30%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 추정이다.
국산 장비 경쟁력이 높아지면 외산 가격이 급격히 떨어진다. 독점 폐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세메스와 케이씨텍은 반도체 세정 장비 분야서 수입 의존도를 크게 끌어내렸다. 원익IPS, 주성엔지니어링, 유진테크, 테스 등은 화학증기증착(CVD) 분야서 경쟁력이 있다. 진공펌프가 전문인 엘오티베큠은 국내 시장에서 영국 에드워드와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최근 점유율 측면에서 우위에 섰다. 피에스케이는 노광을 마친 후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찌꺼기를 제거하는 애싱 장비 분야서 세계 1위 점유율을 갖고 있다. 유니테스트, 엑시콘, 와이아이케이, 디아이 등은 반도체 전후공정 검사장비 시장서 미국 테라다인, 일본 아드반테스트와 경쟁한다.
신규 장비 시장으로 진출도 활발하다. 세메스는 미국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도쿄일렉트론이 장악하고 있는 식각 장비를 내놓고 활발한 영업을 펼치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증착장비 가운데 최고 기술력을 요구하는 원자층증착(ALD) 장비를 국산화했다. 원익IPS, 유진테크, 테스, 케이씨텍 등도 연이어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이 시장을 석권할 태세다. 케이씨텍은 어플라이드가 독점하고 있는 화학기계연마(CMP) 장비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계측 분야에선 신생업체 넥스틴이 유력 업체로 떠오르고 있다. 이 회사는 3D 낸드플래시용 패턴 결함을 검사하는 장비로 올해 300억원대의 매출 기록에 도전한다.
한미반도체는 후공정 핸들러 분야 유력 업체다. 최근 패키징용 전자파차폐(EMI) 등 다양한 장비를 신규로 개발하며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광, 측정분석, 물리기상증착(PVD) 등 핵심 반도체 장비 분야는 진입 장벽이 높아 국산화가 힘들 수도 있다”고 진단하며 “하지만 나머지 장비에 대한 연구개발(R&D)을 지속한다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