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켓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습니다. 완전히 빠졌습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인도를 방문해 크리켓 경기를 관람한 후 한 말이다. 크리켓은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국기(國技)나 다름없다. 쿡의 이번 인도 방문은 2011년 8월 그가 애플 CEO 자리에 오른 후 처음이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비즈니스에 필요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한 명인 그가 인도를 처음 방문해 총리를 만나고 크리켓을 구경한 것은 인도가 애플에 그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인구 12억 대국을 발판 삼아 인도는 애플을 비롯해 세계 스마트폰 업체들이 군침을 내는 지구촌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인도가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것은 탄탄한 경제 성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인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5%에 달했다. 6.9%인 중국 GDP 성장률을 0.6%포인트 차로 따돌린 성과다. 인도 경제 성장률이 중국을 추월한 것은 1999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1분기에도 인도는 7.9%로 세계 최고치인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고속 경제 성장에 힘입어 1분기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이 부진했지만 인도 시장만은 12%나 증가하는 `서프라이즈 판매`를 보였다. 스마트폰 시장이 인도에서 형성된 건 2011년이다. 이후 5년 만에 인도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4월 세계적 투자기관 모건스탠리는 “인도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가 됐다”면서 “고속 성장을 거듭, 내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스마트폰 사용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인도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 스마트폰 사용 국가가 됐다는 일각의 시선도 있다.
가트너는 “스마트폰 신흥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도의 올해 스마트폰 판매량이 26% 늘어나는 등 앞으로 2년 동안 두 자릿수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도 스마트폰 시장이 주목받는 건 성장률뿐만이 아니다. 가격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인도는 더 이상 `저가 스마트폰 시장`이 아니다. 올 1분기에 처음으로 중급 가격대(1만~1만5000루피, 약 17만~24만원) 스마트폰이 저급 가격대(1만루피 이하) 스마트폰 판매를 앞질렀다. 평균 판매가도 1만2983루피(22만7000원)로 전년보다 소폭 상승했다.
잠재 수요 역시 엄청나다. 아직 전체 인구의 18.3%(2억2000만명)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구 절반이 25세 이하다. 스마트폰 같은 최신 기기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인도 스마트폰 시장이 연 20%라는 고속 성장을 달성, `최후의 거대 모바일 시장`이라 불리는 이유다.
스마트폰 확산에 한몫하고 있는 통신 환경도 점차 좋아지고 있다. 4세대 이동통신(LTE)이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현지 통신사업자 바르티에어텔이 인도에서 처음으로 4세대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도 2대 상장사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계열 통신사인 릴라이언스지오도 올해 서비스를 개시한다. 시장조사업체 오범은 인도 LTE 보급자가 현재 미미하지만 2020년에는 세계에서 10%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수요가 급증하다 보니 업체 간 선점 경쟁이 격해지고 있다. 중하위급 시장을 놓고 중국과 현지 업체들이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5개 사나 되는 업체가 뛰어들 만큼 거세게 도전하고 있다.
시장 1위는 여전히 삼성전자가 지키고 있다. 삼성은 인도 북부 노이다에 스마트폰 생산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를 오래 전부터 운영하는 등 정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삼성은 데이터 요금이 비싸고 충전을 자주 하기 어려운 인도 상황에 맞춰 데이터 사용량을 50%까지 줄이는 `데이터 세이빙` 기능과 배터리 사용 시간을 두 배로 늘린 `파워 세이빙` 같은 현지 맞춤형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시장을 주도했다. LG전자도 최근 고가 스마트폰 `G5`를 출시하는 등 인도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섰다.
반면에 애플은 초라하다. 인도 시장 점유율이 3% 안팎이다. 26%로 1위인 삼성전자와 현격한 차이가 난다. 중국과 현지 업체(마이크로맥스, 인텍스, 라바모바일 등)에도 뒤진다. 점유율 확대를 위해 애플은 아이폰을 수리해서 싸게 재판매하는 `리퍼폰(refurbished phone)`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인도 정부의 반대에 막혀 있다. 애플의 인도 공세는 현재진행형이다. 애플이 투자한 폭스콘은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에 1200에이커(약 486만㎡, 147만평) 규모의 아이폰 전용 생산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공장은 내년 말이나 2018년 초에 완공된다. 중국 업체도 비디오 및 오디오 특화 콘텐츠로 무장한 제품을 내놓는 등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화웨이와 샤오미를 비롯해 비포, 오포, 레코, 레노버 등 지난해에만 15개 중국 업체가 인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가격이 무기인 중국 업체는 현지 업체와 치열한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인도 시장 점유율은 2014년 15%에서 2015년 22%로 껑충 뛰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