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영하 150℃에서 얼지 않는 물을 실험으로 입증한 연구다. `극저온에서도 얼지 않는 물 발견`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연구 성과의 주인공은 김채운 UNIST 자연과학부 교수(39)다.
김 교수는 고압 냉각 기술을 이용해 영하 150℃에서 물을 액체 상태로 만들고 이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은 간단한 분자로 이뤄져 있지만 물리적 특성은 매우 복잡하다. 물이 어는점 이하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할 때 이를 `과냉각` 상태라 한다. 이때 물의 물리적 특성은 보통 액체와 다르다. 과학계는 이러한 현상을 물 내부 구조가 고밀도와 저밀도 상태를 급격히 반복해 변하면서 생긴 결과라 추정해왔다. 20년 동안 가설 수준에 머물던 현상을 김 교수는 과학적 실험으로 확인했다.
나노 크기에서 순간적이고 빠른 움직임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체 단백질 작동 원리`를 규명한 것도 김 교수의 대표적 연구 성과다.
이 같은 연구 성과의 배경에는 고압 상태에서 분자 구조를 손상 없이 냉각하는 `고압 냉각 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고도의 압력을 가했을 때 단백질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자 `고압 냉각 방법`을 고안했다. 지금은 단백질 작동 원리를 넘어 물 상태 분석, 물과 단백질 상호작용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4월 생체 단백질 중 하나인 `탄산탈수효소` 구조 변화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탄산탈수효소는 인체 내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이는 촉매 기능의 단백질이다. 세포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혈액에 녹여 폐까지 전달하거나 혈액의 산성도를 조절하는 등 생체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촉매작용 속도가 워낙 빨라 그 작동 원리를 규명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는 “이 단백질이 실제 작용하는 모습을 원자 수준의 고해상도로 포착해 단백질 기능 이상 등 여러 원인을 파악했다”며 “신약 개발은 물론이고 기후변화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연구는 특정 분야나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흥미로운 주제를 찾아 유연성 있게 진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영하 150℃에서도 얼지 않는 물 연구는 내가 원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라 선택했다.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스스로 즐겁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물리, 화학, 생물 등 학제 간 접점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새로운 현상이 숨겨져 있다”며 “의공학 분야와 물성 물리 분야로 영역을 넓혀 흥미로운 현상을 찾아 계속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