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은 자기가 만든 줄로 스스로를 묶는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본인이 한 말, 행동에 스스로 구속돼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최근 정부 행보를 잘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핵심 정책으로 추진 중인 `규제 완화`와 `무증세 원칙`이 우리 경제를 오히려 발목 잡고 있다.
증세 없이도 세금 누수를 막으면 재정 건전성 확보와 경제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원칙적으로 맞는 얘기지만 문제는 실행이다. 미신고 역외소득·재산 자진신고제도 등으로 일부 누수를 막았지만, 수 년 전부터 핵심 과제로 꼽혀온 유한회사 과세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국내 설립된 유명 외국계 기업 상당수는 유한회사다. 한 해 매출이 1조원을 넘기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외부감사 의무가 없어 세금을 제대로 걷을 수 없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유한회사에 외부감사, 공시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을 입법예고 했지만 규제개혁위원회 반대에 막혔다. 규개위는 외부감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했지만 공시 의무는 과도한 규제라고 판단했다. `규제는 없애야 한다`는 원칙이 정상적 과세 기반을 무너뜨린 셈이다.
`규제 완화`로 세금을 제대로 못 걷으면서도 `무증세 원칙`은 고수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이 계속 악화되는 이유다. 지난해 국가 부채는 1285조원을 기록했다. 야당은 법인세 인상을 끊임없이 주장하지만 정부는 반대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미세먼지 대책으로 거론된 `경유값 인상`도 결국 `무증세 원칙`에 따라 중도 폐기 했다. `제2의 담뱃값 증세` 지적을 우려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책 추진에 원칙은 중요하다. 하지만 원칙이 결과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면 원칙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경직된 원칙이 아닌 유연한 정책 개선이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