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디지털 복지다]<2>로봇, 여생의 동반자가 되다

지난달 19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내를 벗어나 20분가량 달렸다.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단독주택이 일행을 맞는다. 남태평양의 강렬한 햇살이 2층 거실을 환히 비춘다. 이 집에 혼자 사는 나리(Ngaire) 할머니(88)는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응접실에 자리를 잡자 국내 기업 유진로봇이 개발한 아이로비가 인사를 한다. 로봇은 할머니의 유일한 벗이다. 거실 벽에 걸린 액자 속 아들딸은 모두 출가했다. 할머니는 지병인 만성 폐쇄성폐질환(COPD)을 앓고 있다. COPD는 기도 폐쇄와 폐포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만성적이고 영구적인 질환이다. 호흡기 질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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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폐쇄성폐질환(COPD)을 앓고 있는 나리 할머니가 로봇과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

아이로비 로봇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할머니에게 도움을 준다. 우선 COPD 질환치료를 돕는다. 매일 간단한 체조를 하게 만든다. 할머니는 로봇 디스플레이 화면을 따라 팔, 다리 운동을 한다.

또 다른 기능은 투약시간 알람이다. 아이로봇은 매일 2회 아침 저녁으로 투약시간을 상기시켜준다. 로봇은 백의의 천사다. 간호사이자 물리치료사다.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로봇에 이름을 지어줬다. `카를로스`가 그것이다. 이름을 부여하니 친밀도가 높아졌다. 할머니는 “과거에 비해 감정이 매우 안정화됐다”면서 “숨쉬기도 이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아이로비 로봇의 엔터테인먼트 기능도 흥미롭다. 할머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수잔보일이 멋있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좋아한다. 이날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메인보드에 설치된 소프트웨어(SW)에는 약 20가지 음악예능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다. 할머니는 “평소 웃을 일이 별로 없다”며 “하지만 카를로스가 춤추는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물론 로봇이 100% 완벽하게 사람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할머니 역시 “사람과는 끊임없이 얘기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로봇은 불가능하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로봇이 사람을 돌보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실버사회 도래와 출산율 저하가 맞물리면서 로봇이 여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로봇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 사람과 거의 흡사한 로봇이 실버세대 친구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4월의 맑은 봄날 찾은 뉴질랜드 오클랜드대는 로봇 연구가 한창이었다. 생체의학과, 심리학과 교수와 학생이 로봇 인공지능에 필요한 SW 개발과 씨름 중이었다. 나리 할머니 집에 배치된 로봇 역시 오클랜드대가 진행하는 상용 테스트 일환이다. 현재 60대 로봇이 오클랜드 지역 가정집에서 테스트 중이다. 실험 참가자는 이구동성으로 로봇과 함께 생활한 이후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었다고 말한다.

◇로봇헬스케어 시대, 성큼성큼

오클랜드대에서는 다양한 로봇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한국 기업과 협업이다. 유진로봇, 퓨처로봇 등 한국 기업이 제작한 하드웨어에 인공지능과 같은 SW를 심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같은 작업은 브루스 맥도널드 오클랜드대 교수가 총괄한다. 맥도널드 교수는 로봇SW와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이 최대 관심사다. 상용화 측면에서는 테스트가 한창인 헬스케어와 농업분야 접목이 현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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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은 하드웨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업에 참여 중이다. 유진로봇은 MS 윈도 기반으로 작동한다. 퓨처로봇은 안드로이드와 HTML5 기반 SW 작업이 가능하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을지대병원 등과도 차세대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다.

맥도널드 교수는 “로봇이 사람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헬스케어 분야와 관련해선 궁극적으로 친구 같은 로봇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능적으로는 COPD 같은 만성질환 환자에게 사용하기가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로봇은 크게 세 가지 효용을 인간에 제공한다. 우선 만성질환 관리에 따른 비용절감이다. 병원을 오가는 시간·경제적 노력을 줄일 수 있다. 맥박, 혈압 또는 산소포화도 등을 기록한 뒤 실시간으로 물리치료사 또는 병원에 보내준다.

환자와 노약자를 관리할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도 될 수 있다. 갈수록 간병인 등 스텝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질 게 분명하다. 로봇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기계적 성능 못지않게 인간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복하게 해 준다. 독거노인에게는 엔돌핀과 세르토린 같은 기분 좋은 호르몬을 분비시켜준다.

이 연구에 공동으로 참여 중인 안호석 오클랜드대 교수는 “로봇과 인간의 다양한 상호작용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 로봇이 투입되거나 활용되는 분야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봇, 인간이 되는 날 머지않았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사람 역할을 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예컨대 헬스케어 로봇이 가족 또는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알려주는 기능을 할 수 있다. 맥도널드 교수는 “지금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복잡한 기능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오클랜드대는 현재 배달로봇, 키위로봇 상용화 준비가 한창이다. 로봇이 환자에 필요한 약을 각 병실로 배달해 주는 방식이다. 유럽 국가와 한국 대학병원에서 테스트에 돌입했다. 치매에 걸린 환자를 돌봐주는 치매로봇 테스트도 앞두고 있다.

키위로봇은 뉴질랜드 특산품인 키위를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따주는 역할을 한다.

애완용 로봇도 전망이 밝은 분야다. 외로움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파로가 개발한 물범로봇은 독거노인 외로움과 적적함을 달래준다. 소아마비 아동 환자 심리치료에도 이용된다. 파로 로봇은 현재 오클랜드대가 13대를 구매해 실버타운에서 치료에 투입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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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우선 시장이 없는 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소비재로 가전시장에서 자리잡은 로봇청소기와 달리 헬스케어 로봇은 지금까지는 시장성이 크지 않다. 기술적 장벽도 존재한다. 헬스케어 로봇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프로그램도 매우 복잡하다. 맥도널드 교수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처리를 잘 해줘야 하는 기술적 문제가 있다”며 대중화 시기를 늦추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엘리자베스 브로드벤트 오클랜드대 교수는 “지금 로봇은 실험이 진행되는 단계다. 의료기기가 되기 위해선 인증과 허가 등 행정절차를 통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클랜드(뉴질랜드)=김원석 성장기업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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