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찾은 SK이노베이션 충북 증평 이차전지 분리막(LiBS) 생산공장은 쉴 새 없이 돌고 있었다. 몰려드는 주문에 생산된 분리막은 잠시 보관될 겨를도 없이 포장돼 나갔다. 그야말로 `못 만들어서, 못 팔 지경`이다.
◇“쉴 틈 없어요”
“(분리막을) 만들어내는 족족 한·중·일 3국 시장을 중심으로 다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모업체는 다른 고객사에 납품할 제품이라도 달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날 6개 생산라인은 말 그대로 100% 풀가동 중이었다. 직원들은 쉴 틈이 없다고 했지만 웃음기가 가득했다.
강문수 SK이노베이션 B&I 전력기획부장은 “IT시장 성장세와 전기차 시장 개화로 이차전지 분리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며 “일본 메이저 업체에서도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시장이 커진다고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릴까`란 의문을 안고 생산시설로 향했다. 파란색 방진복과 흰 모자를 쓰고 에어샤워를 했다.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한 바닥 복도를 지나 6호기에 다다랐다. 깔때기 모양의 거대한 연료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고체 상태 폴리에틸렌 파우더(분말)가 주입되면 고온 압출 과정을 거쳐 말랑말랑한 상태로 가공된다.
이후 40m 길이 공정을 지나면서 폴리에틸렌 반죽을 수 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까지 얇게 펴는 것이 핵심이다. “쌀을 부어 가래떡을 뽑고 피자 반죽을 펴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강 부장 설명이 와 닿았다.
언뜻 간단해 보이는 공정인데 그렇게 품질 차이가 확연히 나는지 궁금했다.
강 부장은 이에 대해 “공정이 간단히 보이지만 우리나라 몇몇 대기업이 사업에 나섰다가 실패했을 정도로 기술을 요하는 공정”이라며 “분리막을 늘리는 2차 연신(늘림) 과정이 차별화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경쟁사는 폴리에틸렌 반죽을 상하좌우 방향으로 `동시에` 잡아 당겨 얇은 분리막을 만든다. SK이노베이션은 상하좌우 각각 `따로` 늘린다. 분리막은 연신 정도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SK이노베이션은 양방향 연신 비율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다. 제품 특성, 용도, 고객사 요구에 맞는 스펙 제품을 다양하게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SK이노베이션만 보유한 기술이다. 지난 2007년 세계 최초로 관련 기술을 완성했다. 지난 2013년엔 업계 최초로 5㎛ 박막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 기술이 바탕이 됐다.
일반적으로 분리막 두께를 줄이면 이온 투과율은 높아지지만 강성이 약해진다. 분리막이 전지 양극과 음극 사이에 위치해 폭발·발화를 막는 일종의 안전장치임을 감안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강 부장은 “SK이노베이션 분리막은 이온투과율과 강성을 모두 잡았다”며 “품질 경쟁력은 자신있다”고 말했다.
검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관리자 여럿이 출고를 기다리는 최종제품을 정밀하게 살피고 있다.
임근성 전지소재생산팀 과장은 “제조 과정에서 제품이 정상적으로 생산됐다하더라도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표면 오염, 돌출 등을 확인한다”며 “가장 숙련된 인력이 배치된 곳”이라고 말했다.
사업장을 나오는데 벽 한 면에 `여러분들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공장은 37만 시간 연속 무재해를 자랑하고 있다. 충분히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말이다.
◇“세계 1위 꿈이 멀지 않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지난달 20일 “장기 저성장의 `뉴 노멀(New Normal)`에 대비해 과감하고 선제적 사업구조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B&I사업은 투자 확대 의지를 확실히 밝혔다. 현재 가장 큰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분리막사업에 화력을 집중한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증평 6개, 청주 3개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현재 생산량은 연간 2억2000만㎡다. 증평공장에 10·11호 2개 라인을 증설한다. 2018년 완공하면 생산량은 3억3000만㎡로 껑충 뛴다. 순수전기차 100만여대에 장착할 수 있다.
2020년 습식 분리막 기준 세계 1위 제조사에 오른다는 목표다. 분리막은 제조방식에 따라 건식과 습식으로 나뉜다. 습식 분리막은 제조비용이 더 들지만 품질, 강도가 우수하다. 세계 분리막 시장 70%가 습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 시장에서 일본 아사히카세이에 이어 2위다. 지난해 기준 점유율 26%다. 경쟁력을 감안하면 역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 분리막 수요 70%가 IT기기에 들어간다. 향후 전기차 배터리용 수요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 전기차시장 성장세에 따른 후광효과가 기대된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 판매 대수는 총 24만7500대로 세계 최대다. 분리막 수요가 급증한 반면에 중국에는 습식 분리막 제조사가 없다.
시장분석 업체 B3는 분리막 시장이 2020년까지 연평균 17% 고속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IT기기용 수요는 연간 9%, 전기차용 중대형 전지용 수요는 연간 29%까지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 규모는 2010년 세계 7000억원, 우리나라 2200억원에서 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급성장하며 2020년 3조원 규모로 수직 점프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분리막 생산설비 가동률은 지난해 70%를 넘어서며 이미 상위 업체에 수혜가 집중되고 있다.
강 부장은 “이차전지 유형에 상관없이 분리막은 반드시 들어가기 때문에 수요는 무조건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시장 수요에 따라 빠른 투자 결정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증평(충북)=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