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반도체 굴기` 제동 걸까… 韓에 WTO규정 위반 조사공조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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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정책에 제동을 건다. 지난해부터 중국 정부가 기업에 지원하는 보조금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에도 공조를 요청했다.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무역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미국의 요청을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반도체 업계와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이사진은 지난해부터 한국측 반도체 협회·단체와 정부에 `중국 정부 보조금 정책에 함께 대응하자`는 요청을 여러 번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좀 더 자세한 중국 측 정보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중국을 함께 압박하자는 의미도 담겼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업체에 연구개발(R&D) 등 명목으로 지급하는 자금이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규정을 위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WTO는 과도한 보조금 지급이 공정 무역에 지장을 초래할 때 피해를 본 국가가 상계관세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미국 SIA는 지난해부터 세계반도체협의회(WSC)를 통해 이 문제를 도마에 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WSC는 매년 2월, 5월, 10월에 열린다. 2월에는 한국, 미국, 유럽, 대만, 일본, 중국 등 6개국 반도체산업협회 실무자들이 모여 그해의 의제를 논의한다. 5월에는 협회 대표와 각국 주요 반도체 기업 대표가 모여 연례 사장단 회의를 연다. 정부간 협의체 연례회의가 열리는 10월 회의에는 굵직한 국제 의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도 한다. 예컨대 모듈로 분류돼 있던 멀티칩패키지(MCP) 무관세화도 이 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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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SIA는 지난해 5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이 불공정하다는 입장을 조심스레 밝혔다. 칭화유니그룹의 마이크론 인수 시도 등 중국 반도체 굴기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미국이 노골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미 SIA는 지난해 10월 정부 정책 담당자가 모인 자리에서 “중국이 WTO 규정을 위반하지는 않았는지 따져보자”고 제안했다.

중국은 이를 외면했다. 다른 국가 정책관도 중국 측의 무역 보복이 두려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미국 측 주장은 힘을 받지 못했다. 이 자리에는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 부품소재정책관도 참석했지만 미국 측 제안에 동조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이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26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튼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WSC 연례 사장단 회의가 열린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 주재로 각국 반도체협회 이사진과 인터실, 글로벌파운드리, SMIC, 화훙그레이스, TSMC, UMC, 파워칩, 인피니언, NXP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여 회담한다. 공개 회담에선 `반도체 산업, 과거 20년과 미래 20년`이 주제지만 비공개 회담에선 미국 SIA가 동일한 사안을 놓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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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계자는 “각국 정부의 동조를 끌어내야만 이 문제를 도마에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의 무역 보복이 두려워 우리 정부, 기업이 쉽사리 동조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미국도 표면으로는 SIA가 나섰지만 배후에는 상무부와 기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일단 도마에 올라가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상당 시간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그나마 미국이 참여하고 있어 문제 제기라도 할 수 있지만 한국, 일본, 대만의 주력 산업인 디스플레이 패널의 경우 보조금 문제는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삼성과 LG는 중국 정부와 싸우고 있는 셈”이라고 푸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이종준기자 1964wint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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