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인간미 없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흔들렸다. 이세돌 9단이 둔 5번기 4국 78수였다. 이후 알파고가 둔 몇 수는 바둑 해설자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이에 앞서 벌어진 1, 2, 3국에서 프로기사인 해설자도 생각지 못한 기묘한 수로 놀라게 한 때와 딴판이었다. 오히려 해설자는 알파고가 왜 그런 수를 뒀는지 고민하는 듯 하다가 이내 해설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잘못된 수라고 판단했다. 영화 `로보캅`에서 오류가 발생해 오작동을 일으키는 로봇 같았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의 78번째 수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확률 1만 분의 일밖에 안 되는 창의적 수로 AI 신경망을 뚫었다.
알파고에 탑재된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숫자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았다. 대국에 사용한 CPU와 GPU는 각각 1920개와 280개로 판후이 2단과 경기할 때보다 업그레이드됐으며, 스스로 학습도 했다고 한다.
알파고가 두는 신의 한 수와 사람이 두는 신의 한 수는 개념이 다르지만 양쪽 모두 상대가 생각하지 못한 한 수로 승기를 잡은 것은 사실이다. 확률과 경우의 수를 연산해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자리에 두도록 프로그램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긴다는 목적은 같지만 경기를 풀어 가는 스타일은 AI와 사람이 달랐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펼친 세기의 대결은 바둑 열기와 함께 AI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앞다퉈 AI 연구개발(R&D)과 산업활성화 방안 마련에 나섰다. 미래부는 전담팀을 가동해 AI 종합계획을 만들어 다음 달 대통령에게 보고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책은 알파고 같은 계기가 있을 때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금방 끓었다 식어 버리는 냄비보다는 목표를 향해 묵묵히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 같은 꾸준함이 더없이 중요하다.
주문정 산업경제(세종) 전문기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