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인공지능 역사상 최초로 인간 바둑 최고수를 격파했다. 이세돌 9단과 5번기 첫 대국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따냈다. 초반 포석과 흔들기에 당황하는 약점도 보강했다. 과감함과 냉정함을 겸비했다. 인공지능 오랜 난제인 바둑을 뛰어넘었다.
◇초반 흔들기에 냉정한 대처, 판후이 때보다 강력한 모습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은 9일 ‘구글 챌린지매치’ 바둑 대국 첫 경기에서 맞붙었다. 대국은 이세돌과 알파고 호선으로 치뤄졌다. 덤 7.5집을 제공하는 중국 룰로 진행됐다. 이 9단이 먼저 흑을 잡고 백은 알파고가 잡았다.
알파고는 가장 많이 사용한 양화점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이 9단이 생소한 포석으로 초반 흔들기를 시도했다. 알파고 학습에 없던 수를 뒀다. 초반부터 강력한 수로 전투를 유도했다. 알파고 약점을 노렸다. 알파고는 초반 포석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몇 수 두지 않아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기 때문이다. 김성룡 9단은 “초반까지 모습이 대등하다. 충격적이다.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세돌 심리전에 약점…중반 전투 전개에 당황한 모습
이 9단은 중반부터 치열한 전투로 유도했다. 강력한 전투력으로 인간 선수에게 강한 압박을 가하는 게 특기다. 그러나 기계인 알파고는 심리전이 통하지 않는다. 겁먹거나 기세에 압도되지 않는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는 모든 수에 거의 같은 시간을 소비한다”며 “인간 기사는 어려운 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 같은 심리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9단은 중반 전투에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흑 67수에서 실수로 잘못된 지점에 착수하려 하는 등 아찔한 순간을 연출하기도 했다. 경기 도중 자신 시간을 소비하며 화장실에 갔다 오는 모습도 보였다. 김성룡 9단은 “이 9단이 1년에 한 번 보이기도 힘든 모습을 보였다”며 “경기가 진행될수록 시간에 밀리는 이 9단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알파고에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알파고 위기 시 과감한 침입 시도까지…인공 지능 난제 바둑 뛰어넘어
알파고는 중반에 실수를 저질렀다. 변화를 꾀했지만 오히려 평범한 수보다 못한 수를 뒀다. 바둑은 모양을 중시한다. 묘수가 아닌 이상 좋지 않은 모양을 쉽사리 두지 않는다. 김성룡 9단은 “인간 프로 바둑기사는 기세를 중시해 이전 수를 잘못 둬도 저렇게 후퇴하지 않는다”며 “대등하던 바둑에서 보태주면서 불리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실수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방심한 이 9단 허를 찔렀다. 과감한 우변 침입으로 승부를 다시 미세하게 가져갔다. 이 9단 안일한 우하귀 대처도 알파고를 도왔다. 결국 이 9단은 186수째 돌을 던졌다. 알파고가 불계승을 거뒀다.
이번 알파고 승리로 인공지능 발전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는 평가다. 바둑은 오랫동안 인공지능에게 난공불락 과제였다. 크레이지스톤, 젠 등 바둑 프로그램도 프로기사 벽을 넘지는 못했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기계가 바둑에서 결국 사람을 능가했다”며 “계산 능력과 기억능력 외에도 수많은 기보 데이터를 학습해 추가로 사람 직감을 흉내냈다. 흔들림 없고 빠른 계산을 가진 기계 장점과 사람 지능을 더해 나온 결과”라고 평가했다.
바둑 전문가도 알파고가 단기간에 인간 최고수와 대등한 전력을 갖췄다고 입을 모았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는 과감한 모습과 안정적 모습을 모두 보여줬다”며 “중반에 실수를 보였지만 프로 기사와 대등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프로 7단 출신인 김강근 한게임 바둑PD는 “한 판으로 판단하기는 이르나 5개월 전과 비교해 짧은 기간 프로 기사와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했다”며 “약점으로 지적되던 초반을 오히려 유리하게 가져갔고 상대 실수를 잘 공략했다”고 설명했다.
◇강력한 알파고 “한 번 실수도 치명적”
향후 대국은 실수 한번이 승부를 가를 정도로 미세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9단은 5대 0 승리를 낙관했지만 자칫 전체 성적에서 알파고에게 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9단은 “알파고와 대전에서 승리를 자신했지만 첫 대국을 해보니 승률이 5대 5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김 PD는 “알파고와 이 9단과 모두 실수를 범했다. 이 9단이 초반과 유리한 중후반 방심한 모습을 보였다”며 “심리적 요인을 극복해 방심하지 않고 알파고와 전력을 다해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