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apple이라는 너무나 잘 아는 한 단어에도 많은 사연들이 있다. 영국의 신비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읊은 적이 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 순수의 전조 Auguries of Innocence 중 한 구절).” 그리고 한 알의 사과가 보여주는 인간사가 있다.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가 사과일 것이라는 설에서부터 사과는 가장 먼저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선악과가 어떤 과일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2세기에 아킬라 폰티쿠스(Aquila Ponticus)라는 사람이 구약을 히브리 어에서 그리스 어로 옮길 때 자의적으로 선악과를 사과로 옮기면서, 사과로서 선악과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그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남자의 목젖과 관계가 있다. 아담이 이브에게서 이 사과를 받아서 먹다가 하나님이 부르는 바람에 놀라서 먹던 걸 그냥 꿀꺽 삼키다 사과 조각이 목에 걸렸고, 그렇게 아담의 목에 툭 튀어나온 돌기가 생겼다고 해서, 남자 목의 목젖을 ‘아담의 사과(Adam’s apple)’이라고 부른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사과 하나가 전쟁을 일으킨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신과 요정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분풀이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드립니다’하고 새겨진 황금사과를 던지고 사라졌다. 이 때 아름다움에는 자신 있었던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네가 그 황금 사과가 자신의 것이라며 다투자 어떤 여신의 편도 들기가 차마 난감했던 신들은 근처 산의 양치기였던 트로이의 패리스 왕자에게 황금 사과의 주인이 누가 될지 결정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강력한 왕권을, 지혜의 여신 아테네는 명예로운 승리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고 패리스에게 약속했다. 세상 여느 남자와 다를 바 없이 여자는 예쁘기만 하면 다 좋은 성정을 가진 이 평범한 왕자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건넸고, 결국 사과를 받지 못한 두 여신은 복수를 품을 수밖에. 이후 멀쩡하게 남편이 있는 스파르타의 헬레네 왕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 여자였고, 이 여인을 패리스가 트로이로 데리고 도망치면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백설공주가 먹은 독사과도 빠질 수 없다. 어리고 예쁜 여성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아름답기 그지 없는 빨간 사과에 바른 독은, 그 빨갛고 탐나는 속성이 상징하는 에로스(Eros)와 거기에 발린 독이 상징하는 타나토스(Thanatos: 죽음)가 어우러져, 강렬한 이미저리(Imagery)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새빨갛게 욕구를 자극하며 유혹하는 모든 것들의 배후에는 그 욕구를 달성하면 죽는다는, 그 감미로우면서도 공포스러운 결말이 그렇게 늘 도사리고 있다.
아이작 뉴턴의 사과는 이에 비하면 다른 속성을 보여준다. 그의 사과는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을 알아내겠다는 생각에 파묻혀서 구름 속에 머리를 박고 다니던 이 학자의 세계에 느닷없이 침입해 들어가서는 진리는 늘 단순하게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다만 옆에 늘 있는 단순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살 뿐이라는 메시지를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늘 거기에 있으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공기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 중 하나는 사과와 함께 인간의 인지 세계로 떨어져 들어왔다고 할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과 이야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이었던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사과 이야기이다. 독일군의 암호를 푸는 업적을 세웠고 현대 컴퓨터 개발의 단초가 된 연산을 만들어 내기도 했던 이 천재는 동성애가 범죄였던 시절의 동성애자였다. 동성애가 들통이 나서 감옥에 가겠느냐 여성 호르몬을 주사 맞겠느냐는 선택지 중 그는 후자를 택했고, 자신의 몸이 여성 호르몬 때문에 점점 변해가는 것을 보다 절망한 튜링은 사과에 청산가리를 발라서 먹고는 자살을 한다.
그리고 현 시대의 강력한 아이콘 스티브 잡스의 ‘애플’사의 애플을 빼놓을 수는 없다. 한 입 베어 문 사과 모양의 로고를 두고 한때 많은 설들이 돌았었다. 신의 지혜에 도전하는 선악과를 상징한다는 둥, 아이작 뉴턴의 사과라는 둥, 앨런 튜링에 대한 오마쥬라는 등. 그러나 정작 이 로고를 디자인했던 롭 자노프(Rob Janoff)는 2009년에 그 어떤 설도 사실이 아니라고 털어놓으며 애플 로고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을 종식시켰다. 그가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디자인 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게 없으면 다른 과일인 체리로 잘못 보일까 넣었을 뿐이었다. 이렇듯 허탈하게도 우리 시대에 가장 강력한 아이콘 중 하나인 한 입 베어 문 사과 이미지는 과거의 사연들과 엮이기를 거부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 창의성과 의지의 상징으로 부상을 해버렸다. 그러나 단순하나 강력한 이미지라는 점에서 사과가 가진 매혹을 잘 보여주는 일례라고도 하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과 이야기는 사실 우리 눈의 눈동자를 영어로 apple이라고 부르는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이 표현의 연원은 기독교의 성경이다. 성경에서는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 내가 너를 내 눈동자처럼 지키겠다고. Apple of my eye라는 표현은 그렇게 성경에서 비롯되어서 16세기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속 대사로 처음 등장한다. “You are the apple of my eye.”라고 하면, 이는 당신이 내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 된다.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당신 삶에는 있는가 - 한국에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하는데, 그처럼 눈을 가득하게 채우는 차마 소중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가 바로 내 눈 속의 사과와 같은 게 아닐까. 또한 당신은 그 누군가에게 그 눈을 가득 채우는 그런 소중한 존재인가 묻고 싶다.
때로는 위험한 지식으로, 때로는 전쟁조차 배태해버린 헛된 아름다움으로, 때로는 죽음과 결부된 치명적인 유혹으로, 때로는 지극히 단순하나 거대한 세상의 진리로, 때로는 성적 취향과 관계없이 죽음으로 지켜야 하는 인간다움이라는 가치로, 때로는 세상을 바꾼 고집스러운 창의성으로, 때로는 삶을 밝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가치로, 그렇게 사과는 사람들의 삶과 얽히며 구구절절 사연을 담고 있다. 어쩌면 사과가 없는 인간의 삶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면 너무 객쩍은 소리일까.
Joyce Park rowanee@naver.com 필자는 영어를 업으로 삼고 사람에게 가서 닿는 여러 언어 중 영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교양 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영어 교재 저자이자 영어교수법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