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지금은 동반성장보다 동반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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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 대한민국 산업계에는 걱정·불안·두려움이 관통한다.

“10년 넘게 함께 일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하지 않는 건 불문율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스마트폰 부품 업체의 한 임원은 10년 넘게 협력 관계를 맺어 온 대기업에서 ‘이제 다른 곳도 알아 보셨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해 왔다며 걱정했다.

거래 중단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심상치 않으니 기존 거래에 너무 연연치 말고 다른 방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이었다.

이 임원은 “다른 거래를 탐탁지 않아 하던 고객사가 권장을 하니 정말 상황이 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어떻게 이 힘든 시기를 견뎌야 할지 고민이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글로벌 경기 침체가 산업 현장에는 빠르고 깊숙이 침투했다. 절절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다른 대기업 협력사 관계자는 “‘어떻게든 2~3년만 버텨 달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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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인식모듈을 만드는 크루셜텍 베트남 공장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부품·소재 업계 동향은 경기 풍향계다. ICT산업 선행지표라 불린다.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품·소재가 앞서 준비돼야 하기 때문이다. 부품·소재가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업도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제품을 선보일 수 없다. 다른 말로는 ‘산업의 씨앗’이라고 부른다.

부품·소재 산업 위기는 산업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다. 위기의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건 동반성장보다 동반극복일 것이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악조건을 함께 이겨 낼 수 있는 지혜와 혜안이 있어야 한다. 전자왕국 일본이 한국이나 미국에 완제품 시장을 빼앗기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건 세계적인 부품·소재만큼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완제품을 잠식당하고 있는 우리도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과 협력사의 생존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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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이노텍이 지난달 21일 협력사들과 동반성장을 다짐하는 행사를 가졌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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