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 EDA 정부 지원 사업이 지식재산권 인식 낮췄다

국내 반도체 팹리스, 디자인하우스 등이 전자설계자동화(EDA) 툴을 불법으로 이용하다가 적발됐다. 코스닥 상장 업체도 다수 포함돼 파장이 예상된다.

1차 책임은 툴을 불법 이용한 해당 업체에 있다. 그러나 그동안 국민 세금으로 원칙 없이 지원 사업을 펼치면서 EDA 소프트웨어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희석시킨 정부 책임론도 떠올랐다.

정부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산하 SW-SoC융합R&BD센터(이하 센터)의 ‘SoC 설계 환경 지원 사업’으로 중소 팹리스, 디자인하우스가 정품 EDA 툴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올해부터 이 예산은 끊어졌다.

정부 보조금이 나왔을 때에도 잡음은 끊이질 않았다. 연간 매출액이 수백, 수천억원에 이르는 팹리스 업체도 이 지원을 받았다. ETRI가 정부 보조금으로 구비한 EDA 툴은 종류에 따라 5~10카피밖에 없다.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개발 프로젝트 하나를 돌릴 때 20명, 30명이 붙어야 하는데 구비된 툴은 5~10개밖에 없는 데다 이마저도 여러 기업이 붙어서 사용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면서 “ETRI EDA 회원사로 이름을 올려 두고 모자란 툴은 불법 복제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EDA 업계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높시스 불법복제 단속에 걸려든 다수는 ETRI를 통해 EDA 정부 지원을 받은 업체들이다. 케이던스, 멘토그래픽스는 정부 지원을 받는 업체를 몰아붙이기 어렵다고 보고 단속에 나서진 않았다.

ETRI 센터 관계자는 “매년 정부와 산업계 관계자가 모인 운영위원회에서 지원 업체 기준 등을 정했으나 상장 업체 또는 매출액이 다소 높은 기업 당사자들이 ‘우리도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토로했다.

이렇다보니 EDA 공급 업체가 정부 예산이 투입된 지원 사업 수혜 업체 기준을 정하는 이상한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해 시높시스는 “상장 기업은 안 된다”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EDA 업체 고위 관계자는 “기준 없는 정부 지원 정책이 EDA 지식재산권 인식을 흐리고, 심지어 불법 복제를 부추긴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EDA 지원에 예산을 배정할 생각이 없다. 김정화 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디스플레이 과장은 “정부는 지금까지 충분히 할 만큼 했으니 이젠 민간이 해결해야 한다”면서 “근본 해결책은 팹리스가 자체 역량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지원이 절실한 영세 팹리스 업계 입장은 다르다. 이런저런 EDA 툴을 구비하려면 적게 잡아도 2억원 가까이 지불해야 한다. 한 해 매출이 수십억원 수준인 회사로서는 대응이 불가능한 현실이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국가 지능형반도체추진단장)는 “아이디어와 역량, 열정이 있다면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춰 줄 필요가 있다”면서 “팹리스로 대표되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메모리와 달리 국제 경쟁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팹리스 업계의 EDA 툴 활용을 ‘양성화’시키고 EDA 공급업체 불만도 해소할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면서 “민간 업체와 협회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진단했다.

EDA 툴 업체도 시장을 먼저 키워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EDA 툴 가격을 낮춰 불법복제 대신 합당한 가격에 정품을 소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 정부 EDA 툴 지원 예산

2012년96억원

2013년62억원

2014년48억원

2015년35억원

2016년0원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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