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컴퓨터프로그램(인공지능·AI)이 바둑 게임에서 유럽챔피언 프로 기사를 제쳤다. 오는 3월 서울에서 세계최강 이세돌 9단과 100만달러(12억원)의 상금을 걸고 인간의 자존심을 건 기계와의 한판 대결을 벌인다.
네이처는 27일(현지시간) 구글의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개발한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 Go)’가 유럽 바둑 챔피언이자 중국 프로 바둑기사인 판후이와 다섯 차례의 대국에서 핸디캡(치수)을 적용하지 않고도 5전 전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1997년 IBM의 딥블루가 세계 체스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이래 인공지능 프로그램 발전에 또다른 한획을 그은 대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바둑은 AI에게는 여전히 엄청난 도전 영역으로 간주돼 왔다. 컴퓨터가 인간을 제치려면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여겨져 왔다. 바둑에는 워낙 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 데다가 착점한 수를 평가하고 다음 수에 대한 가치를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국시 한번에 수조번의 경우의 수를 연산처리해 내야 한다.
하지만 마침내 컴퓨터가 바둑에서도 유럽 바둑 챔피언인 중국인 프로기사(2단) 판후이를 제치면서 AI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알파고는 오는 3월 한국의 최고 프로기사 이세돌과 대결한다.
앞서 지난 1997년 5월에는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는 러시아의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적이 있다. 2011년에는 IBM의 왓슨이 퀴즈프로그램에서 인간을 제치고 승리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가장 뛰어난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도 아마추어 바둑 기사를 깨는 수준이었다. 컴퓨터프로그램이 프로 바둑기사와의 대결에서 치수 적용없이 이긴 것은 사상 처음이다.
■구글 알파고 어떻게 설계됐나?
구글 딥마인드사의 알파고는 착점된 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치(value) 네트워크’와 다음 번에 어떤 수를 둘지 선택하는 ‘정책(policy) 네트워크’를 사용하도록 개발됐다.
알파고 심층 신경망(deep neural)은 이를 바탕으로 이중 훈련을 받았다. 하나는 바둑기사들이 둔 게임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자신과 두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었다.
이런 개발·학습 과정을 거친 알파고는 다른 바둑 프로그램들과의 대결에서 99.8%의 승률을 기록했고, 유럽바둑챔피언 판후이와의 대국에서 5대 0으로 완봉승했다.
네이처는 “십 년쯤 후에나 현실화될 것으로 여겨졌던 위업을 달성했다”며 “이번 성과는 다른 까다로운 인공지능 영역에서도 인간 수준의 능력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존 다이아몬드 영국바둑협회 회장은 “IBM의 딥블루가 게리카스파로프를 제친데 이어 인공지능이 최고의 바둑기사를 꺾는다는 목표는 가장 어려둔 도전이었다....판휘와 알파고의 게임을 보면 어느 쪽이 컴퓨터이고 어느쪽이 인간인지 알기 어렵다”고 감상을 전했다.
알파고는 오는 3월 서울에서 10여년 째 세계바둑 최고봉에 있는 이세돌9단과 대결할 예정이어서 또 한번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세돌은 “구글의 딥마인드 인공지능이 엄청나게 강하고 점점더 강해지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내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구글 자회사가 된 딥마인드사의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가 우승하면 구글이 제공하는 상금을 자선금으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재구 전자신문인터넷 국제과학 전문기자 jk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