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희생 아닌 이익 나누는 `따뜻한 혁신`하고 싶다"…이근면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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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바꾸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가.”

어설프게 딴죽을 걸었더니 바로 맞대응이 들어왔다. 괜한 말을 했다 후회할 틈도 없이 혁신론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안 바꾸면 우리 미래가 어찌 될지 생각해 보라. 그럼 답이 금방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관가 화제 중심에 섰던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을 새해를 열흘 남짓 앞두고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예상대로 막힘이 없었다. 제한된 지면에 담을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로 혁신에 관한 주관과 철학이 뚜렷했다.

이 처장은 2014년 11월 취임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삼성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민간 인사전문가가 중앙 부처 수장으로 왔으니 눈길을 끌만 했다. 게다가 인사혁신처가 어디인가. 세월호 사태 이후 불거진 ‘관피아’ 척결 숙제를 안은 곳이다. 낡은 공직문화와 전쟁을 치러야 할 자리다. 이 처장은 취임 후 1년 여간 인사·교육·보수체계·연금 등 공직 전반에 걸쳐 대수술을 단행했다. 어떤 이는 복지부동 공무원 조직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며 과감한 혁신 작업에 박수쳤다. 일각에서는 공직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공무원 사기를 떨어뜨렸다며 부정적 시선을 보냈다.

-많은 공무원이 ‘혁신’이라고 하면 거부감을 느낀다.

▲누구나 변화는 두렵다. 나라고 공무원 사회 들어올 때 두려움이 없었을까. 변화와 혁신은 두려움에서 시작한다. 혁신이라는 칼끝이 잘못 향하면 일순간에 퇴보한다. 지금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시기다. 목소리를 내고 변화 움직임을 이끌어야 한다.

우리는 그간 추격자 시스템으로 성장했다. 앞으로 선도자 시대로 갈 수 있을까. 자문자답해봐라. 국가가 공무원연금을 계속 주려면 지속 성장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복지 예산을 늘리려면 성장이 필요하다. 답은 하나다. 공무원도, 국가도 밸류(가치)를 높여야 한다. 나 하나쯤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놓고도 종전과 별 차이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인사혁신처는 2017년까지 연봉제 대상을 4급 과장 이상에서 5급 사무관으로 확대하는 공무원 보수체계 개편방안을 지난달 발표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민간 기업도 성과연봉제를 처음 도입할 때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초기에는 제도 연착륙을 위해 직원 간 연봉 격차를 크게 벌리지 못한다. 성숙 과정에서 격차를 확대한다.

정부는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점차 바뀔 것이다. 고위공무원급은 성과에 따라 연봉 차이가 꽤 커졌다. 누군가에게 ‘대박’을 안겨주려는 목적은 아니다. 성과에 따라 차이를 둔다는 것이다.

-공무원 교육에서도 칸막이를 헐어 주목받았다.

▲전국 33개 공무원 교육훈련기관과 개방·공유·소통·협력 정부3.0을 구현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종전에는 각 기관이 소속부처 공무원 위주로 교육했다. 기관별 교육과정 중복이 많았다. 기관 간 교육정보 공유가 미흡해 비효율을 야기했다.

협약에 따라 모든 교육프로그램이 전 공무원에게 개방된다. 공무원 교육 분야에서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는 첫 행정실험이다. 공무원은 소속부처와 관계없이 원하는 교육을 받는다. 기관 교육 중복과 비효율성을 줄이는 대신 특색을 살린 명품교육과정을 개발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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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지난해 12월 싱가포르에 다녀왔다던데. 인사나 혁신 측면에서 벤치마킹할 점이 많았나.

▲싱가포르와 우리나라는 자원도, 땅도 협소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두 나라 모두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우리가 배울 점은 배우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싱가포르 성장은 진행형, 진화형이다. 성장 DNA를 끊임없이 리뉴얼했다. 흥미로운 점은 정부 인사 파트에 미래 전략 조직이 설치, 운영됐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국가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인적자원이라고 판단했다.

이 처장 말대로 싱가포르는 지난 2009년 총리실 인사국 전략정책과에 미래전략센터(Centre for Strategic Futures)를 신설했다. 복잡하고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범 정부 미래 예측 싱크탱크다. SP+(Scenario Planning Plus) 기법 등으로 전략적 미래 예측과 위험관리 역량을 강화했다. 각 부처 차관보급 고위공무원이 1년에 두 차례씩 모여 미래 트렌드를 토론하는 ‘미래전략네트워크(Strategic Futures Network)’를 운영했다. 지난해 7월 총리실 전략그룹으로 이관됐다.

-얼마 전 부처 약칭을 ‘인사처’가 아닌 ‘혁신처’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인사를 넘어 국가혁신으로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뜻인가.

▲앞으로 인사혁신처 방점을 ‘혁신’에 찍겠다는 것이다. 출범 후 1년간 크게 두 가지 과제에 주력했다. 하나는 미래 국민 부담을 덜고 공무원과 국민 형평성을 맞추는 공무원연금 개혁이다. 또 하나는 공무원 채용 혁신, 교육 정상화, 전문화 등 인사 혁신이다. 이제는 공적 경쟁력을 국가 경쟁력 근간으로 만들고 성과를 내는 단계로 나아간다. 내년이 스타트라인이다. 방점을 혁신의 출발, 혁신의 확산에 놓는다.

물론 혁신처가 할 수 있는 일은 법이 규정한 부분까지다. 사람(인사)을 혁신하면 시스템과 환경 혁신으로 이어진다. 혁신처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문제를 제기하고 방향성을 제시한다. 앞으로 이들이 어우러질 때 더 좋은 혁신, 완성된 혁신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혁신이 끝난다는 말은 아니다. 혁신의 끝은 없다. 모든 성공한 조직과 국가는 끊임없이 혁신했다.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살아남으려 지속적으로 변화한 DNA 생존법이다. 자연의 법칙이다.

-이상적인 혁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혁신을 하되 따뜻한 혁신을 하고 싶다. 모두가 이익을 공유하는 혁신, 모두가 결과를 나누는 혁신이다. 구성원 희생을 딛고 이루는 혁신이 아니다. 이것은 저항이 심하다.

우리가 하려는 혁신은 공무원 가치와 성과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를 성장시키고, 세계와 경쟁한다. 국민 모두에게 성과가 돌아가도록 하는 동력이자 엔진으로서 공무원을 혁신하자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공무원의 자기인식이고,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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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혁신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국민이 공무원하면 떠올리는 색깔과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꿈이 있다. 공무원하면 따뜻한 희망을 나타내는 푸른색, 푸릇한 그린색, 꿈을 상징하는 핑크색 등이 연상되면 좋겠다. 공무원과 국민이 서로에게 신뢰를 보내는 사회, 이것이 진정한 국민행복시대 아닐까.

한강의 기적을 넘어 태평양의 기적을 만들고 싶다. 잘 사는 나라를 넘어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미래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어떻게 속도를 맞출 것인가.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는데 어떻게 단순화해 효율성을 확보할 것인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작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더 큰 기득권을 차지해야 한다. 일부가 아닌 국민 모두의 기득권이다. 기존 질서를 창조적으로 파괴해 더 많은 것을 창조해야 한다. 과거 좋은 점과 앞으로 가야할 길을 잘 융합해 발전시켜야 한다.

컨센서스를 모아 미래에 대비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폭넓게 의논해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다음 세대에게는 생존을 넘어 성장의 경험을 전해줘야 한다. 이제는 생존의 시대가 아닌 성장의 시대다.

-혁신이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되지 않나.

▲바둑으로 치면 미생으로 공무원 사회에 들어왔지만 완생을 꿈꾼다. 두 집을 내고 싶다. 두 집을 못 내면 빅(서로 공격할 수 없는 상태, 바둑이 끝난 뒤에도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이라도 만들고 싶다. 빅은 지속적으로 계속 간다. 내가 심어놓은 (혁신) 씨앗이 죽지 않기를 희망한다. 아직도 확신은 없다. 분명한 것은 혁신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퍼뜨려야 한다.

만년이 지난 씨앗에서 싹이 트기도 한다. 꿈이 있으면 조금씩 자란다. 죽은듯하지만 살아남는다. 꿈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 처장은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만 의미 있는 실패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의미 있는 실패’라고 쓰지만 읽을 때는 ‘성공의 시작’이라 읽는다고 했다.

이 처장은 요즘도 매일 아침 업무를 시작할 때마다 초심을 떠올린다. 혁신 필요성을 널리 인식시키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취임 후 국무위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다양한 이들을 만나 혁신 중요성을 설명했다. 동참을 구하고 호소했다.

그는 “고무적인 것은 중앙부처뿐 아니라 지자체도 혁신에 공감하고 필요성을 얘기하기 시작했다”며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움직임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 의미 있는 실패가 아닌 의미 있는 성공을 기대해 봄직하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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