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분야 입찰·심사 제도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투명하고 효율적 제도로 발전해 왔다. 조달청이 지난해 200억원 이상 대형 소프트웨어(SW) 사업은 전문 평가위원 풀(당시 50명)에서 평가위원을 선발해 심사하기로 한 것도 입찰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다.
조달청은 지난 10월 대상 사업 기준을 40억원으로 낮추고 평가위원 풀을 80명으로 늘려 제도를 개선했다. 사물인터넷(IoT) 발달로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도 21명으로(기존 8명) 확대했다. 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대형 정보화 사업, 평가 전문성 필수
재난망 시범사업 심사 과정 논란의 핵심은 조달청이 선정한 평가위원 80명 중 21명인 정보통신 분야 위원의 이동통신 전문성 여부이다. 통신업계는 시범사업의 SW 비중이 높지만 재난망은 단말기와 기지국 등 이동통신 테스트가 핵심이기 때문에 이동통신 전문가 평가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달청이 생각하는 ‘정보통신’은 SW 분야를 포함한 ‘정보통신’이다. 엄밀히 나누면 21명 중에서도 이동통신 전문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통신업계는 한두 시간 제안 발표 뒤 이를 평가하는 방식이어서 반드시 통신 전문가가 있어야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업에 참여한 관계자는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 2~3년간 사업을 추진하고 10년 동안 사용하는 게 재난망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중요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 평가위원이 필요하다”며 “전문성 없는 평가는 중소기업을 비롯해 사업을 준비해온 모든 참여 업체에 피해가 될 수밖에 없다”며 말했다.
반면에 조달청은 정보통신 분야는 폭넓은 개념으로 이동통신에 한정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정보통신 분야 평가위원의 전문성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범사업은 시스템(SW)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서 적절히 평가위원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재난망 사업 주관부처인 안전처 역시 네트워크 분야 전문가가 많이 배정되도록 조달청과 협의를 했다고 전했다. 같은 평가위원을 두고 업계·학계와 정부 부처 간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복합 사업 위한 평가제도 보완돼야
재난망 시범사업은 SW, 정보통신공사, 엔지니어링 사업으로 발주됐다. ‘망’을 설치하고 무전기를 쓰기 때문에 통신 역할이 가장 크지만 SW와 보안, 운영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 업계는 대형 복합사업 평가제도 보완과 개선이 있어야 논란을 예방할 수 있다.
홍대형 재난망포럼 의장(서강대 교수)는 “재난망은 초대형 정보통신 구축 사업으로 SW나 통신 등 분야를 구분 짓기가 어렵다”며 “그렇다면 그에 맞는 사업 분류와 최적화된 심사위원 풀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고심 끝에 심사위원 선정 방식을 택했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심사에 참여했던 다른 평가위원은 “공정성에서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면서도 “하지만 통신 전문가 풀이 별도로 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새해 통신 분야에는 철도통합망(LTE-R), 해상망(LTE-M)을 시작으로 재난망 본사업 등 굵직한 사업이 진행된다. 통신 업계는 통신 분야 전문 평가위원 풀을 구성해 활용해야 전문성 있는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 무선통신 전문가는 “재난망 같은 큰 사업은 새로운 분류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평가위원 풀을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프로젝트 규모와 분야에 맞는 평가위원이 있어야만 심사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범사업 기간 중에 업계 의견을 파악하고 통신전문가 풀 구성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