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이 글로벌 거래지표 원유인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을 앞질렀다. 5년여 만이다. 늘 브렌트유에 끌려 다니던 WTI가 가격을 역전시킨 원동력은 40년만의 미국 원유 수출 재개다. 미국 내 WTI 수요 감소 기대감으로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계엔 긍정적 신호다. 미국 산업계 원료 경쟁력 약화가 유럽·신흥국 원가 구조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24일(현지시각)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배럴당 38.1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전일 대비 60센트(1.6%) 올랐다. 배럴당 34.74달러를 기록한 지난 21일 이후 11% 급등했다. 반면에 유럽 대표 유종인 브렌트유는 약세다. 이날 종가는 배럴당 37.89달러다. 이달 들어 15%가량 하락했다. 지난 22일엔 36.11달러로 2004년 7월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WTI 급등, 브렌트유 하락으로 두 유종 지위도 바뀌었다. 지난 22일 2010년 8월 16일 이후 5년 4개월 만에 WTI보다 낮아진 뒤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수년동안 WTI는 브렌트유보다 낮은 가격에 팔렸다. 셰일 혁명이후 미국 내 원유 생산·재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내 수요 회복과 원유 수출 재개 결정은 상황을 바꿨다. 미국 12월 기온이 평년 수준을 회복하며 난방 수요 둔화 우려가 해소됐다. 미국 원유 수출 금지 조치 해제는 브렌트유 프리미엄을 약화시켰다. 유럽 수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리비아 원유 생산 회복 전망도 브렌트유 약세를 이끌고 있다. 당분간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손재현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원유 수출을 통한 미국 내 과잉 재고가 완화돼도 유럽 쪽 공급이 많아 브렌트유가 다시 WTI를 추월하기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우리 산업계에는 유리한 국면이다. 우리나라 업계는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가장 높다. 벤치마크인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34.72달러로 가장 낮다. 석유제품과 기초소재를 만드는 원료 가격 경쟁력이 가장 우수하다. 지난 5년간 낮은 원가로 상대적인 우위를 점했던 미국 업계 경쟁력이 약화된 반면에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유럽과 우리 산업계는 반대 효과를 볼 수 있다. 미국산 원유 도입이 당장 현실화되기 어려워도 중동산 원유 가격 협상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양해정 이베스트 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제조업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던 낮은 원가경쟁력이 사라지면서 미국 중심 시장흐름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미국만이 누리던 수혜가 글로벌 전체로 확산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고 유럽시장 경쟁력이 회복되면 상관관계가 높은 신흥시장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