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가 신형 엔진 개발에 소프트웨어 개발 표준 ‘ASPICE(Automotive SPICE)’를 적용하기로 했다. LG화학 등 배터리 업체를 제외하면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 대부분이 ASPICE 인증을 받지 않았다. 대비가 시급하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신형 ‘감마Ⅱ’ 엔진 개발을 위한 협력사 공모를 내면서 권장사항으로 ASPICE 인증 획득을 언급했다. ASPICE가 국내 완성차 업계에 도입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SPICE는 ISO 15504와 ISO 12207을 바탕으로 유럽 완성차 업계가 제정한 자동차 소프트웨어(SW) 개발 표준이다. 자동차에 전자제어장치(ECU) 사용이 많아지면서 소프트웨어 품질관리 필요성이 커지면서 도입됐다. BMW와 다임러, 아우디, 볼보 등 유럽 자동차 회사를 중심으로 ASPICE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 업체들도 ASPICE를 채택하고 있다.
ASPICE는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이행해야 하는 31개 프로세스에 대해 평가한다. 프로세스 능력 지표는 레벨 0부터 레벨 5까지 6단계로 나눠진다. 현재 유럽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레벨 2~3 수준을 준수해야 한다. 이번 현대차 감마Ⅱ 엔진 개발 프로젝트는 구체적인 레벨 수준을 명시하지 않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ASPICE는 유럽에서 이미 필수적으로 인증 받아야 하는 국제 표준이지만 국내에서는 이번 현대차가 처음으로 적용하는 것”이라며 “감마Ⅱ 엔진은 준중형 세단부터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까지 고루 적용될 수 있는 차량으로, 레벨 2 이상 인증을 받은 업체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ASPICE 도입을 시작하면서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는 바빠졌다. 국내에서 ASPICE 인증을 받은 업체는 10여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완성차 업체에 납품이 가능한 레벨 2 이상을 획득한 업체는 현대모비스, LG화학, 삼성SDI, LG이노텍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ASPICE를 도입하면서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글로벌 진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요구사항을 준수하기 위해 ASPICE 인증을 획득하면 유럽과 미국 자동차 업체에 대한 납품이 가능해진다. 최근에는 ASPICE 심사원 자격을 인증·관리하는 국제기구 ‘인탁스(INTACS)’가 한국 지역 대표 심사원으로 한국인을 선임했다.
업계 관계자는 “ASPICE 도입은 국내 부품업체에게 단기적으로는 인증을 받기 위해 힘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현대·기아차 매출 비중을 낮추고 품질 개선까지 가능하다”며 “외국인 심사원은 국내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인증이 어려웠지만 한국인 심사원이 선임되면서 여러모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종은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