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40년 만에 원유 수출을 재개한다. 정유업계는 원유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원가 경쟁력을 제고할 기회로 보면서도 수출 인프라 부재 등 요인으로 당장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초경질유(컨덴세이트) 스팟 도입 물량을 늘리면서 수입 비중이 중동국과의 협상력을 차츰 높인다는 전략이다.
21일 외신,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하원은 원유수출금지 해제 조치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내년도 예산안에 동의했다. 백악관도 동의 의사를 밝힌 상태다. 예산안 제출 마감 시간인 22일이 지나면 사실상 원유수출금지 조치가 해제된다. 지난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석유 수출을 금지한 이후 40년 만이다. 미국 정부가 원유 수출을 다시 허용한 것은 재고 감축과 고용 창출을 위해서다. 미국 원유 재고는 8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석유개발업계는 원유 수출 금지 조치 해제 관련 로비를 수년째 지속해왔다. 미국 싱크탱크인 IHS는 이번 조치로 미국 원유 생산은 2030년까지 평균 하루 120만배럴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최근 생산량 대비 13% 증가한 수치다. 미국 원유 생산량은 올해 하루 900만배럴 정도다.
글로벌 1위 정제설비 보유국인 미국 시장 내 WTI 구매 경쟁이 심화돼 결과적으로 두바이유 비중이 높은 아시아 정유업계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분석이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최대 2달러가량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 정유 업체가 가동률을 유지하려면 원유 매입 경쟁이 심화돼 WTI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 정유 업체 수익성 악화, 설비 가동률 하락, 세계 정유 공급량 감소, 정제 마진 강세로 이어져 우리나라 정유업체 실적 개선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중동 산유국 간 원유 판매 경쟁이 본격화돼 중동 원유판매가격(OSP)이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호재다.
수출 경제성이 부족하고 수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 변수다. WTI와 브렌트 유종 간 가격차가 배럴당 1달러 미만이다. 적어도 WTI가격이 배럴당 3~4달러는 낮아야 운송비를 빼고도 수익이 남는다. 현재 상황을 보면 수출량이 급증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또 미국 내륙에서 생산한 원유를 해안까지 보내 수출해야 하는데 철도, 항구 시설 등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우리 정유업계는 당장 큰 파장보다는 점차 원가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로 봤다. 당장은 해외 시장에서 원유 중계무역을 통한 차익거래를 하거나 중동 국가와 가격 협상력도 높이는 데 주력한다는 분위기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초경질원유인 컨덴세이트 도입 비중을 서서히 높이면서 현재 도입 비중이 높은 중국국가와 협상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서 “당장 도입선 비중이 크게 바뀔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