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운명의 12월, 국내 서버·스토리지 시장 ‘태풍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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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을 포함한 대기업의 공공 서버, 스토리지 시장 제한 여부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서버, 스토리지의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지정 여부에 국내 시장 전체가 촉각을 기울인다.

◇미래부의 ICT장비 육성 전략과 중기간 경쟁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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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지정 공청회 모습. 이날 열린 공청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서버, 스토리지 품목이었다.

중기간 경쟁제품은 중소기업 공공판로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다. 지정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3년에 한 번씩 품목을 지정한다. 지정 신청요건은 국내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10곳 이상인 산업과 공공기관 연간 구매실적이 10억원 이상인 제품이다.

서버, 스토리지의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 논의가 수면 위로 오른 것은 지난 2013년 12월이다. 그해 8월 미래창조과학부는 ‘ICT장비 경쟁력 확보 방안’을 발표했다. 외산제품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방송장비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적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미래부는 중소 서버, 스토리지 업체로 구성된 한국컴퓨팅산업협회 창립을 지원했다. 또 협회를 통해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을 추진했다. 공공시장만이라도 외산 제품 진입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국내 중소기업은 환영했다. 반면에 HP, 델, IBM 등 외산업체와 이들의 협력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쪽은 생존권 확보를, 다른 한쪽은 역차별을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다.

신청 첫해인 지난 2014년 중소 서버, 스토리지 업계는 지정 탈락을 경험했다. 외산업체의 강력한 반대와 함께 중소장비는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절치부심한 중소업계는 올해 5월 중기간 경쟁제품을 재신청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음 달 발표된다.

◇중소 VS 외산업체, 1396억원 시장 두고 ‘팽팽’

이들이 서로 차지하려는 공공 서버, 스토리지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미래부 공공부문 ICT 장비사업 수요예보 결과에 따르면 2014년 공공 서버시장은 1343억원이다. 스토리지는 63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 전체 시장 중 각각 12%, 14%를 차지한다. 특히 서버는 컴퓨팅산업협회가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 신청 당시 x86서버 제품군에 국한했다. 공공 x86서버 시장은 764억원이다. 전체 서버 시장에서 6%밖에 안 된다. 사실상 이들이 싸우는 시장은 국내 서버·스토리지 시장 1조5370억원 중 9%에 해당하는 1396억원에 불과하다.

국내 중소 서버, 스토리지 기업도 이 같은 사실에 분통을 터뜨린다. 전체 10%도 채 안 되는 시장을 확보하겠다는 건데, 마치 국내에서 사업을 가로막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산업체가 주장하는 신뢰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컴퓨팅산업협회가 중기간 경쟁제품으로 신청한 영역은 x86서버 부문이다. 공공 서버 시장에서도 절반밖에 안 되는데다 사실상 고도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이다.

중소 서버업계 관계자는 “x86서버는 CPU, 메모리, 하드디스크 등 모든 부품이 표준화돼 진입장벽이 낮은 영역 중 하나”라며 “전체 공공서버 시장을 다 차지하겠다는 것도 아니라 그 중 절반에 해당하고, 기술력도 크게 필요하지 않은 x86서버 영역에 우선 진출하겠다는 것인데 무조건 반대하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공 서버, 스토리지 시장에서 외산제품 비중은 95%에 달한다. IT 강국이라고 자처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외산으로 도배됐다. 국내 서버, 스토리지 산업 육성과 IT 자주권 확보 차원에서도 외산편중 현상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HP, 델 등 외산업체 반대도 만만치 않다. 우선 법적으로 특정 제품 진입을 차단하는 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갈라파고스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중국 등 일부 국가가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국산장비 도입을 우대한 사례는 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외산제품 진입을 막는 것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외산업체는 주장한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제품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도 펼친다. 아무리 x86서버가 표준화돼 있지만 여전히 이 제품은 시스템을 구동하는 핵심 인프라다. 국산 서버, 스토리지라고 부르는 제품은 대부분 대만이나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수준이다. 자체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기업은 찾기 어렵다. 또 장애가 발생했을 때 전국적으로 기술지원을 펼칠 여력도 없다. 중소 서버, 스토리지 기업 신뢰성에 의문을 나타내는 이유다.

외산 제품을 유통하는 협력사도 문제다. 외산 서버, 스토리지 등을 유통하는 업체는 전국에 1000여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외산 제품을 공공시장에 납품할 수 없다면 이들 생계도 막막해진다는 것이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 그 방향은

정부나 관련 전문가도 국내 ICT 인프라 시장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소프트웨어(SW) 중심 연구개발 전략으로 서버, 스토리지 등 하드웨어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 개발하려니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에까지 밀린다. 결국 차별화된 장비 개발 정책과 중소기업 육성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가장 빠른 방법이 제도적으로 외산제품 진입을 막는 것이다.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과 같이 강제적으로 중소기업에 시장을 만들면 당장은 이들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기술개발과 인력채용 등으로 이어져 산업육성 선순환 고리를 만든다. 장기적으로는 외산업체에 대항하는 체력도 기를 수 있다.

우려도 나온다. SW산업진흥법 시행이 그 예다. 일정 규모 이상 공공 정보화 시장에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면서 중소SI업체에 시장이 열렸다. 하지만 이로 인한 품질저하, 사업연기 등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서버, 스토리지를 자체 생산한다는 중소기업은 전국 10여개에 불과하다. 이들이 말하는 생산 시설 역시 컨테이너 몇 개와 조립을 위한 방 한 칸이 전부인 곳도 많다. 시기상조라는 우려다.

공은 중소기업청에 돌아갔다. 현재 중기청은 관련 부처 의견을 수렴 중이다. 이후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다음 달 중순 결과를 고시한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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