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영덕 원전 투표 D-2, 원전 소재지역 민심 긴급점검

Photo Image

원전 건설이나 재가동 관련 이슈가 불거지면 인근 지역에선 매번 반대 활동이 벌어진다. 반면에 원전에 찬성하는 쪽은 가만히 사태를 지켜볼 뿐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원전 주변지역 민심은 대부분이 이랬다. 최근 이 같은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원전 입지에 반대하지 않은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신규원전 건설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영덕에서 원전 지지 주민들이 민간단체가 진행하는 투표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그들은 외부 단체 주도로 진행하는 투표 과정과 결과에서 지역 분열 등을 우려했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4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원전 주변지역 민심은 어떨까. 영덕 원전 투표를 일주일 앞둔 지난 4일과 5일, 원전 소재지인 영광과 경주를 찾아 원전 관련 주민의견을 들어봤다.

◇영광, 굴비산업 타격 없어…“건설공사 당시 호황 그리워”

전남 영광은 1986년부터 30년 가까이 원전을 곁에 두고 현재 원전 여섯 기를 품고 있다. 그동안 영광원전은 한빛으로 이름을 바꾸고, 원전 배수로 낚시터를 개방하는 등 친환경 이미지 제고에 노력을 쏟아왔다.

영광은 대표적 지역 특산물 ‘굴비’가 유명한 곳으로 ‘대게’ 특산물을 가진 영덕과 유사한 면이 많다. 영덕 일부 주민이 원전 유치에 따른 대게 수확과 상권 영향을 걱정하는 만큼 영광에서도 원전 유치 후 굴비 상권에 영향이 있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어쩌면 무의미한 질문일 수도 있다. 굳이 통계 수치를 찾아보지 않아도 생활하면서 원전이 있는 곳이라고 영광굴비를 먹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법성포 굴비맛길에서 만난 허모씨 대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씨는 “영광에 살면서 원전 때문에 굴비에 문제가 있었다고 느끼거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일부는 어종이 바뀌고 상권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고기가 커가는 과정에서 많이 잡힐 때도, 덜 잡힐 때도 있고 바다 변수는 수도 없이 많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법성포는 과거 척박한 땅이었다. 갯벌과 갈대만 있던 땅을 명소로 만들기 위해 자갈도 깔아보고 폐아스콘 포장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법성포 해안도로 주변으로 상권이 조성되면서 주말이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영광은 원전 민심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영광 원전 3·4호기를 우리 기술로 건설하면서 안전성 관련한 많은 반대에 부딪혔던 이미지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지역주민은 과거와 달리 많이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일부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도 이곳에 왔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한때 활발했던 반대 운동도 안 한 지 오래다. 허씨는 반대운동도 실상 외부 단체가 들어와 주도했지 지역주민 반응은 미지근했다고 기억한다. 그는 “외부 단체의 계속된 권유에 주민들이 반대 운동에 참여하긴 했지만 나무그늘에서 쉬다 오는 정도였다”며 “외부 단체가 반대여론 조성이라는 원하는 바를 채우고 지역을 떠나면 정작 주민들에게 남는 것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영광은 새로운 동력을 원하고 있다. 영광 원전 5·6호기 준공 이후 10년 넘게 건설공사가 없다 보니 지역경제가 조금씩 식어가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섯 달 정도 걸리는 계획예방 정비는 지금도 하지만 일시적 공사인력 유입보다는 건설공사 처럼 대규모 인력 지속적 상주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섬 지역 주민이 영광에 유입되지만 또 그만큼 기반을 다진 사람들이 다시 도회지로 나가면서 주민 수는 정체 상태다. 별도 기업시설이 전무한 상황에서 그나마 원전으로 지역 일자리와 경제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지만 과거 원전 건설공사 당시 호황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일까. 한빛 원전에 근무 중인 지역주민 김씨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지역 지원이 마을 지속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엔 지자체가 중심이 돼 도로건설 등 지역 인프라 개선 등에 원전 지원금이 사용됐지만 지금은 한수원도 직접 주민들과 함께하는 지원 사업을 벌이면서 지원 체감도를 높이고 있다.

농기계 대여사업은 대표적 주민대상 지원 사업이다. 트랙터와 같은 농기계에 부착하는 각종 부가장비 등을 대여해 지역농가 지출을 줄이는 사업이다. 농기계 부가장비는 1년에 한두 번 사용하는 게 전부지만 가격은 몇 백만원에 달한다. 한빛 원전은 영광군 농업기술센터와 협력해 농기계 부가장비 71종을 구매해 이를 지역 농민에게 대여해주고 있다. 2009년 홍농면에서 시작한 친환경 우렁이 농법은 이제 입소문이 돌아 지금은 영광군 전체가 활용하고 있다. 원전 주변 쌀을 누가 사먹겠냐던 불만도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

영광은 주말 관광객뿐 아니라 일반 거주민 증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주민발전위원회를 구성해 한빛 원전과 함께 주민 이탈을 막고 유입인구를 늘리기 위해 경제협력, 장학, 환경개선, 복지 분야 등에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영광(전남)=


◇월성, 원전·방폐장·한수원까지…“지역발전 기대감 커”

천년고도 경주. 경주는 역사탐방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 원자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올해에만 방사선폐기물처분장과 신월성 1·2호기가 본격 운영되기 시작했고 다음 달이면 한수원 본사가 이전한다. 원자력 관련 핵심 시설이 모두 모이면서 주변 지역 발전 기대감도 쑥쑥 자라고 있다.

기자도 올해만 벌써 네 번째 경주 방문이다. 그만큼 원자력 관련 이슈가 많았던 곳이다. 월성 원전 1호기 계속운전과 관련해 지난 2월 방문했을 때 곳곳에서 반대 현수막과 피켓 시위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월성 원전 정문 앞에선 계속운전을 반대하는 측과 찬성하는 측이 각각 텐트를 치고 시위를 벌이며 대립각을 세웠다. 신월성 2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7월에도 거리 곳곳에서 반대 현수막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지난 5일 다시 찾은 월성 원전 풍경은 앞서 세 번 방문 때와 사뭇 달랐다. 보문관광단지에서 월성 원전으로 들어가는 길에 보였던 현수막은 사라지고 신월성 1·2호기 준공식을 알리는 홍보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홍보관 앞에 진을 쳤던 텐트는 대부분 철수했고 확성기 소리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월성 1호기 계속운전 당시 이주를 요구했던 주민 일부만 남아 비닐하우스에서 조용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월성 원전이 자리 잡고 있는 경주 양남면 역시 영광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방폐장에 한수원 본사까지 오면서 지원 규모는 늘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역 상가 매상 확대와 같은 단발적 사업이 아닌 마을 유입인구를 늘리는 방안이 최대 현안이다.

초등학생 5·6학년 자녀를 둔 부모가 진학을 위해 떠나지 않아도 되는 곳, 병원을 찾아 다른 마을로 가지 않아도 되는 곳, 사람이 찾아오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양남면 주민 숙원이다.

양남면 주민인 하모씨는 월성 원전 관광명소화 사업을 계획 중이다. 방폐장이 들어서 있는 양북면과 월성 원전이 있는 양남면으로 이어지는 해안가는 문무대왕릉과 주상절리가 단짝처럼 마주보고 있고 유독 물이 맑아 관광지로 안성맞춤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마을에 정착해 살 수 있는 수익사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원전과 방폐장 지원금으로 내년부터 본격 관광지 조성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하씨는 방폐장과 한수원 본사 이전에 따른 지원 효과가 당초 기대보다는 작다고 말한다. 그는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경주’라는 말이 돌았다”며 “하지만 최초 계획과 달리 지원규모가 계속 바뀌는 것은 솔직히 불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발전에 원전이 기여하고 있음은 인정했다.

이제 월성 원전은 지역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월성 원전 최대 동문회가 경주고가 된 지 오래다. 마을 주민도 지역발전을 위한 활용 수단으로 원전을 바라보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무언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안이 없다면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얻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최근 영덕 상황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 방폐장 유치를 놓고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하 씨는 영덕 원전 투표와 관련해 외부 단체에 흔들리지 말고 지역발전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월성 원전 1호기 계속운전 찬성을 위해 단식도 하고 주변 어르신에게 꾸지람도 많이 들었던 그다. 그런 그가 영덕 주민에게 “외부 단체는 반대여론을 위해 행동하고 지역발전은 그들의 목적에 없다”며 “이들이 말하는 원전 위험성 정보는 받아들이되 판단은 위험성과 지역발전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양남면은 최근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제안 공모를 진행 중이다.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이용해 사람들이 찾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미 주상절리 바닷가에는 예쁜 커피숍과 숙박시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원전 찬반 갈등을 뒤로 하고 마을의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나선 셈이다.

월성(경북)=

<원전 인접지역 표준공시지가 (단위 : 원/㎡)/자료:국가통계포털>

원전 인접지역 표준공시지가 (단위 : 원/㎡)/자료:국가통계포털

<원전 건설 및 운영 기간 법정지원금(150만㎾h용량 원전 2기, 이용율 85%, 건설비 신고리 5,6호기 기준)/자료:한국원자력문화재단>

원전 건설 및 운영 기간 법정지원금(150만㎾h용량 원전 2기, 이용율 85%, 건설비 신고리 5,6호기 기준)/자료:한국원자력문화재단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