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질적 병폐로 악화된 공공정보화 시장을 개선하려는 정부 노력을 보면 본질(本質)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본질은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 근본적 속성이나 원인을 의미한다. 이러한 본질이 공공정보화 시장 개선 노력에서 간과된 느낌이다.
공공정보화 시장 개선 해법으로 분할발주가 떠오른다. 설계·구축을 분할 발주해 1·2단계로 진행하자는 것이다. 분할발주가 공공정보화 시장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인 건 분명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분할발주 도입과 함께 공공정보화 시장이 왜 악화됐는지 본질을 봐야 한다.
우선 상당수 공공정보화 사업은 적정한 사업예산을 배정 받지 못한 저가 사업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공공정보화 예산은 매년 동일하다. 반면에 업무 전산화로 정보시스템 규모는 계속 늘어난다. 정부3.0 등 특정 이슈 수행을 위한 과제도 늘어난다. 단위당 사업예산이 줄 수밖에 없다. 저가 발주가 저가 수주로 이어져 사업 품질을 떨어뜨리는 구조다.
공공기관 정보화 사업 발주 및 관리 역량 부족도 본질적 문제다. 대부분 공무원은 순환보직제로 한 부서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보화 사업 전문성이 떨어져 사업 발주나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 공무원이 사업 수행업체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시장진입을 차단하는 대·중소기업 상생이 아닌 실질적인 상생을 할 수 있는 상생 모델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야 분할발주 도입 효과가 난다.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분할발주를 도입했다 실패한 일본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10년 전 우리와 유사한 공공정보화 시장 병폐를 겪다 분할발주를 도입했다. 잠시 시장이 개선되는 듯하더니 오히려 설계와 구축이 연결되지 않고 설계 사업자 횡포가 발생하는 등 문제만 커졌다. 최근 일괄발주로 회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분할발주 도입과 함께 본질적 문제인 저가 사업과 공무원 역량 부족 문제도 반드시 짚어야 한다.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어떤 좋은 제도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만다. 모든 혁신과 개선은 본질적 문제 제거부터 시작한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