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EPA발 ‘폭스바겐 디젤 스캔들’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정부는 실도로 주행 검사를 강조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디피트 디바이스’ 실체 규명 여부에 주목한다. 실도로 주행 시 배출가스 초과 배출은 이미 수차례 확인된 사실인 반면에 조작 고의성을 입증할 핵심 단서인 디피트 디바이스 실체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관련 고시를 활용해 자료 제출을 요구한 상태다.
환경부는 이번 조사에서 이동식 배출가스 측정장비(PEMS)를 활용한 실도로 주행 테스트와 함께 아우디폭스바겐 측 임의설정장치 관련 자료도 확보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이는 환경부가 지난 2011년 디피트 디바이스 존재를 확인한 뒤 개정한 ‘제작자동차 인증 및 검사 방법과 절차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제조사 임의설정이 의심되면 환경부 장관, 국립환경과학원장 요청으로 관련 설계 문서를 넘겨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환경부 관계자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측에 공문을 보내 임의설정 관련 자료를 달라고 요구한 상태”라며 “독일 현지 조사 및 본사와 협의해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업계가 이 자료에 주목하는 것은 실도로 주행 테스트보다 새로운 내용이 나올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실제 도로환경과 시험 당시 배출가스 배출량이 다르다는 사실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밝혀진 실도로상 배출가스 초과 배출량만 기준치의 1.14~9.6배에 달한다. 아우디·폭스바겐 대상 도로 주행 테스트가 ‘재확인’ 수준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전문가는 “PEMS를 활용한 도로 주행 테스트는 시험실 조건의 배출가스 배출량과 실제 배출량을 규명하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조작 고의성을 입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실제 도로에서 훨씬 많은 배출가스가 나온다는 사실은 이미 수차례 알려진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결함을 확인하고도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해 제조사를 처벌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아우디 3개 차종 배출가스 촉매변환기 제작결함을 확인하고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를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인증 받은 부품보다 현저히 낮은 성능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회사가 실제와 다른 부품으로 인증을 획득해 결과적으로 ‘부품 바꿔치기’ 범죄를 저질렀다고 봤지만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해 기소가 무산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미국도 조작 로직은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만큼 자료를 받는다고 해서 암호 같은 문서를 해독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며 “도로 주행 시험에서 미국과 같은 수준의 배출량 차이를 얻어낼 수 있다면 조작 사실을 인정케 하는 압박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