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2011년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의 핵심인 ‘디피트 디바이스’ 존재를 확인한 후 수 차례 아우디폭스바겐 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양측 간 공방과 안일한 대처로 조사가 무마되거나 미진했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번 파문으로 다시 시작한 조사에서는 개정 고시를 활용해 조작장치와 관련된 설계 문서까지 받아낼 수 있게 됐다. 수년 간 수면 아래 묻혔던 조작 실체를 명확히 밝혀내 오명을 씻을지, 또 실효성 있는 조치와 소비자 배상이 가능할 지가 향후 관건이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디피트 디바이스’에 경각심을 가진 계기는 2010년 제작자동차 결함확인 검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내 시험 환경에서는 대상 차량 대부분이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했지만 에어컨 가동 여부 및 흡기 온도에 따라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작동이 중지되는 현상이 발견됐다. 주행 조건에 따라 EGR를 켜고 끌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환경부는 이를 계기로 일부 제조사에 시정 명령을 내리고 관계 법령 정비에 나섰다.
이후에도 실제 주행 조건에서 배출가스 배출량이 시험조건 때와 다르다는 사실을 수차례 확인했다. 결국 올해 6월 질소산화물 과다 배출을 해결하기 위해 ‘이동식 배출가스 측정장비(PEMS)’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시험실 외부 실제 도로조건에서 배출가스를 직접 측정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폭스바겐그룹이 차량 시험 환경을 파악해 EGR 작동 여부를 고의로 조작하는 ‘디피트 디바이스(Defeat Device)’를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정부도 이 장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의도적 조작 가능성을 발견하고 제도까지 정비했지만 핵심 조사 대상은 파헤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에도 폭스바겐 디젤차 판매 비중이 유난히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2010년 교통환경연구소(교환연) 조사 결과를 보면 경유차 일부 모델은 에어컨 작동 등 특정 조건에서 EGR 작동 신호가 일정하게 바닥을 쳤다. EGR 작동 중단은 규칙적으로 이뤄졌다. EGR 작동을 의도적으로 중지시키는 ‘디피트’ 정황이다. 환경부와 교환연은 이를 설계상 ‘결함’이 아닌 고의적 ‘조작’ 가능성으로 판단하고 시정 명령을 내렸다.
이 현상은 2011년 말 ‘제작자동차 인증 및 검사 방법과 절차 등에 관한 규정(환경부 고시)’ 개정 때 ‘임의설정’으로 표현된다. 고시 제2조 19호를 신설, 임의설정을 ‘일반적인 운전 및 사용조건에서 배출가스 시험모드와 다르게 배출가스 관련 부품의 기능을 저하되도록 그 부품 기능을 정지·지연·변조하는 구성부품’이라고 정의했다. EPA가 밝힌 ‘디피트 디바이스’ 기능과 같다.
또 고시 제7조 2항 단서를 마련해 ‘임의설정’을 이용한 배출가스 조작이 의심되면 제조사 설계 전략까지 받아낼 수 있는 권한도 담았다. 환경부 장관 또는 국립환경과학원장 요청이 있으면 제조사가 설계 전략, OBD 알고리즘, 설계 상세내역 등 임의설정 여부를 판단할 모든 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디피트’라는 표현은 이후 보고서에도 종종 사용됐다. EGR 등 배출가스 부품 작동을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일례로 2012년 교환연 ‘운행조건별 경유차 배출특성 조사 연구 보고서’는 경유차 질소산화물 저감방안으로 ‘배출가스 관련 부품 기능저하(Defeat)를 방지하는 통제 수단 도입’을 제안했다. 자동차 인증 단계부터 ‘디피트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사후검사에서도 디피트 기능을 추적 조사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는 환경부가 2011년 개정한 고시보다도 훨씬 강력한 규제다. 필요시에만 자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사전·사후 심사에서 제조사의 배출가스 부품 기능 조작을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또 ‘정비소 등에서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정상 작동되지 않도록 불법 ECU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는 것에 관계 부처 합동으로 지속적인 지도 단속’할 것도 제안했다.
결국 폭스바겐 사태로 촉발된 디젤 게이트에서 우리나라 정부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최소한 EPA 조사와 비슷한 시기,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번 사태 위험을 감지했다. 폭스바겐뿐만 아니라 규제 당국의 안일한 대처가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 디젤 사태는 자동차 업계에 소문이 무성하던 조작 실체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라며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