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문 가전의 특징은 ‘경영 안정성’과 ‘집중’이다.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해 그것만큼은 세계 최고 자리를 노리는 전략이다. 중소·중견기업 특성상 안정적으로 사업에 역량을 쏟을 수 있도록 한 원칙주의 가족경영도 돋보인다.
일본 도쿄 유라쿠초 전자양판점 ‘빅카메라’. 지하 1층 생활가전 매장에는 파나소닉, 도시바, 히타치 등 대형 전자 브랜드와 함께 에어컨 ‘다이킨’, 주방가전 ‘타이거’와 ‘조지루시’ 등 전통의 강소 브랜드가 소비자를 기다린다. 급증한 중국인 관광객에게 이들 제품은 구매 1순위다.
1923년 오사카에 설립된 타이거는 아시아 최초 보온병 자체제작에 힘입어 소형 주방가전을 평정해왔다. 같은 해 간토대지진에서 수많은 보온병 중 타이거 제품만 온전히 남았다는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일본 보온병을 세계 최고 제품으로 각인시켰다.
이후 보온병 기술을 기반으로 밥솥과 커피포트 등 특화한 주방 제품을 출시해 사세를 확장했다. 1970~1980년대 경제성장으로 인한 가전수요 급증과 함께 주방에 집중했다. 이후에는 식기건조기, 토스터 등 관련 제품을 출시하며 ‘종합 주방가전 기업’을 표방한다.
소비자와의 접점도 넓혔다. 일찍이 보온병으로 인정받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4만원대 저가형부터 초고가 프리미엄까지 갖춰 소형 주방가전은 대기업이 넘볼 수 없도록 했다. 유통채널은 백화점, 양판점에서 공항 면세점까지 다양화해 ‘쉽게 살 수 있는 주방가전’을 표방한다.
지난해 매출은 463억엔(약 4500억원)으로 중국, 인도, 베트남에 진출, 시장 확대에 적극적이다. 창업자 기쿠치 다케노리 가문의 가족경영은 경영 안정성에 보탬이 되고 있다. 현재는 1999년 취임한 기쿠치 요시사토가 3대 경영에 나서며 해외진출을 이끌고 있다. 기쿠치 사장은 “타이거는 단기 이익을 쫓는 대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우량 중견기업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서구권에서는 독일 밀레의 가족경영이 돋보인다. 칼 밀레, 라인하르트 진칸이 1899년 공동 창업한 이래 안정적 공동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버터 등 유제품 생산을 위한 ‘크림 분리기’ 개발 후 주방을 중심으로 한 생활가전에 집중하며 유럽 명품 브랜드 자리를 확고히 했다.
사안이 생길 때마다 논의하고 관용정신에 따라 상대 의견을 경청하며 경영 사안을 결정해왔다. ‘혈통보다 능력’을 기치로 후계자 선정도 엄격하다. 경영능력을 입증해 제3자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진칸 밀레 회장은 “후손이라고 경영능력도 유전으로 물려받는 건 아니다”며 “밀레가 아닌 외부에서의 경험을 공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한다”고 소개했다.
도쿄(일본)=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